“숨쉬는 한국 신화의 원형 탐구”
제주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 열린 마을굿의 한 장면. 제주에는 굿이 중요한 마을 행사 중 하나로 육지에 비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사진 제공 탐라문화연구소
25일 오전 9시, 가파도로 가는 배를 타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선착장에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의 강소전 씨(제주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를 만났다. 가파도에서 열리는 사흘짜리 굿을 보러 가는 길. 하지만 파도가 심해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있어도 나오는 배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 씨는 “가파도에 아는 심방(무당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 좀 보기 드문 굿거리를 한다고 해서 꼭 봤으면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천 지창조 - 생명탄생 등 구전
풍어굿 등 다양한 민속신앙으로
3월 말, 봄을 앞두고 제주 전역에서는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크고 작은 굿이 열린다. 제주 굿의 특징은 본풀이(무속신에 얽힌 이야기)가 길다는 점. 큰 굿에서는 12마당이 넘는 본풀이가 열리기도 한다. 12마당은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된다. 건국신화에서 시작되는 육지의 신화와 다른 점이다. 그만큼 한국 신화의 원형이 제주 신화 속에 남아 있다. 제주 신화에는 사투리와 고어(古語)가 많아 토박이도 알아듣기 힘들다. 채록한 방언을 현대어로 옮기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외부 연구자들이 쉽게 다가설 수도 없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는 이 같은 제주도의 민속 신앙과 생활문화, 나아가 근현대사를 연구하며 제주 특유의 전통과 문화를 현대에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내는 곳이다.
1967년 설립 당시 이 연구소는 신화, 전설, 굿 같은 민속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중점을 뒀다. 최근 출간된 ‘동복 정병춘댁 시왕맞이’ ‘이용옥심방 본풀이’ 등은 연구소에서 제주도 주요 굿의 순서와 내용, 구조를 분석하고 채록한 결과물이다. 1982년부터 학술지 ‘탐라문화’도 발간해왔다.
최근 2, 3년 사이 연구소는 연구 분야를 근·현대사로도 확장하고 있다. 2008년 출간된 ‘일제하 제주도 주둔 일본군 군사유적지 현장 조사 보고서’는 그 결과물이다. 일제가 패전 직전 제주를 마지막 보루로 삼기 위해 건설한 각종 군사 기지를 조사했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 연구도 박차
독특한 음식문화에도 관심
탐라문화연구소에서 민간 정보기술(IT)업체와 합작해 개발한 캐릭터 ‘궤네깃또’. 궤네깃또는 제주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사진 제공 탐라문화연구소
허남춘 탐라문화연구소장은 “제주도는 육지와 교류가 적기 때문에 버릴 것을 빨리 버리지 못하고 근대화되지 못했던 땅이다. 하지만 자연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전통음식,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민속문화 등 제주가 버리지 못한 것 속에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가치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제주=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