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의 어느 날. 한 중국 음식점에 한국 프로야구의 내로라하는 강타자 몇 명이 모였다. 이병규(LG), 박재홍(SK), 박용택(LG), 손시헌(두산)….
이날 모임의 총무를 맡은 손시헌의 손에는 야구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좌중을 한번 둘러 본 뒤 기록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회원님들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병규 7타수 무안타, 삼진 3개, 박용택 4타석 모두 삼진, 박재홍 6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4개, 현대 래리 서튼 5타수 무안타, 그리고 미국으로 막 돌아간 SK 캘빈 피커링은 6타수 무안타에 삼진 4개입니다."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씨가 쓴 '야구가 기가 막혀!'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 한토막이다.
이 모임의 이름은 '무안타클럽'.
당시 한화의 새내기 투수였던 류현진(23)에게 6개월 동안 단 한 개의 안타도 때리지 못하고 있던 각 팀 간판타자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에게 류현진은 '공공의 적'이었다.
호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류현진의 볼을 잘 쳐낼 수 있는 것은 스위치 타자이기 때문입니다. 왼손 투수 류현진이 던질 때면 저는 오른쪽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위치 타자는 야구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타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 왼손 투수 때는 오른쪽 타석에, 오른손 투수 때는 왼쪽 타석에 들어서 안타를 칠 확률을 높인다.
어쨌든 2006년 12월 일본 주니치에 입단해 활약하다 지난해 LG로 복귀한 이병규와 1996년부터 지난시즌까지 14시즌 동안 평균 타율 0.290을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는 박재홍, 2009시즌 타격왕에 오른 박용택 등이 무안타에 그칠 정도로 당시 류현진은 신인이지만 '괴물 투수'로 이름을 떨쳤다.
이제 프로 5시즌 째를 맞아 국내 최고의 투수로 자리 잡은 류현진이 이번에는 전 구단 타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다시 한번 떠오르고 있다.
그 이유는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 존이 좌우로 볼 반 개 씩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스카우터들이 '지옥에까지 따라가서라도 데려온다'는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 투수. 여기에 바깥쪽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갖고 있다. 따라서 좌우로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에서는 류현진의 볼은 '언터처블'이 될 가능성이 크다.
류현진은 30일 대전에서 열리는 롯데와의 홈경기에 올 시즌 처음으로 등판한다.
전 타자들의 '공공의 적'이 된 그가 어떤 투구를 보여줄지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