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들 긴 하루]軍이 설치한 50개 천막에 “시신 안치소냐” 항의 철거
부르튼 입술 타버린 가슴 29일 침몰한 천안함의 함미가 발견됐지만 수색작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경기 평택시 제2함대사령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오열하고 있다. 나흘째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이들의 입술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평택=변영욱 기자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실종자 발견 소식은 전해오지 않으면서 이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특히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이 가족들에게 밝힌 ‘생존 가능시한(69시간)’이었던 오후 7시가 지나자 이들은 말을 잃었다.
○ 함미 발견 소식에 한가닥 기대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6시경 ‘선체 후미 발견’ 소식을 접했다. 오전 7시경 부대 안에 있는 실종자 가족 대기소 현관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이제 됐다. 이제는 희망이 있다”며 서로 격려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지켜보러 27일 백령도로 떠났던 실종자 가족들이 돌아오자 분위기는 바뀌었다. 백령도를 찾아갔던 66명의 방문 가족들은 29일 오전 7시 반 제2함대사령부가 있는 평택 군항에 들어서며 “군의 구조 활동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실종자 이창기 원사의 형 이성기 씨는 “백령도로 떠났어도 사고 현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며 흥분했다.
○ 커지는 비관론
천안함의 함미를 찾아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해군의 발표가 이어지자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갔다. 특히 수색작업에 나선 잠수요원들이 함미 선체를 망치로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소식에 실종자 어머니들은 “저 차가운 곳 안에 우리 애가 있는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날 부대 내에서는 각종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민간 구조대원이 투입돼 시신을 찾았다’, ‘시신 2구가 떠올랐다’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실종자 가족들을 더욱 애타게 했다.
○ 폭발한 실종자 가족들
실종자 수색 지연에 항의하기 위해 제2함대사령관실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오후 5시경 사령관실 인근 헬기장 옆에서 50개의 천막을 발견하면서다. 내무반 정도 크기의 바닥에 깔판이 깔려있고 실종자 수와 비슷한 50개의 천막이 쳐져 있었다. 이 천막을 ‘시신 안치소’로 여긴 가족들은 천막을 부수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한 실종자 가족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직 모르는데 초상 치를 준비부터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2함대 관계자는 “지원 인력이 많이 들어와 숙영지를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종자 가족 측은 “가족들에게는 분향소 건립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오후 7시 ‘한계 시간’이 지나자 유가족들은 ‘자포자기’가 됐다. 실종자 박경수 중사의 형 박경식 씨는 “해군의 상황 설명을 듣는 것도 이젠 의미가 없다”며 “TV 앞에서 사망자 명단이 나오는 것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실종자 가족 200여 명의 가장 긴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한편 경찰이 실종자 가족으로 가장한 정보원을 투입했다가 가족들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평택=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동영상=“장례용 천막 아니냐”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