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나 사고 없는 세상을 바라는 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유리 양 사건은 우리 사회가 흉악범죄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자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뭘 했냐’ ‘범인을 극형으로 다스려라’고 흥분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한 듯 잊어버리기를 반복해오지 않았는가.
말만 요란한 정치인들이나 범죄에 온정적이라고 비판받는 사법부는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2008년 3월 안양 초등생 혜진 예슬 양 살해 사건(범인 정성현)에 이어 그해 12월 강간치상범죄 전과자 조두순에 의한 나영이(가명)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아동 성범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올해 2월 다시 유리 양의 희생을 막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자책해야 할 일이다.
한 인터넷 매체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법치주의 강조 발언을 ‘아동 성폭력 범죄는 좌파 교육 탓’이라고 말한 것처럼 왜곡했지만 그의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범죄 증가의 원인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좌파정권 시절 범죄자를 과잉보호한 인권정책도 무시할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은 2005년 범인 얼굴과 신원 공개를 금지하고 불구속 수사 원칙과 임의동행 거부권 등을 강조한 경찰 직무규칙을 만들어 시행했다. 범죄자 인권 보호에 관한 한 어떤 선진국도 못 따라올 정도였다. ‘법대로 하라’는 김길태의 말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유죄판결 비율이 감소하고 유죄판결이라도 형벌이 가벼워진 것이 범죄 증가를 부추긴 요인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권리가 확대되고 대다수의 범죄자가 흑인과 히스패닉이어서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칠까봐 범죄에 유연한 태도를 취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 플러스’)
이런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원은 지난해 아동 성범죄자 465명 중 206명에게만 징역형을 선고했고 그나마 167명은 집행유예로 풀어줄 만큼 온정적이었다. 이와 함께 관행화한 항소법원의 형량 줄여주기, 자백과 물증까지 확보된 흉악범의 얼굴마저 친절하게 가려줬던 비현실적 무죄 추정 원칙, 피해자보다 범죄자 인권에 더 신경 쓰는 왜곡된 인권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흉악범죄는 줄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들에게 희생된 혜진-예슬-나영-유리 양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