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기아자동차의 준대형 신차 ‘K7’을 타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선 디자인에 매료됐고 가속성능과 핸들링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한국산 자동차의 발전 속도를 실감했죠. 시승차가 나오기 전에 하루 저녁만 짧게 타본 것이어서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사실 시승기 기사 마감을 앞두고 성능 위주로 급하게 테스트를 했던 터라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흐른 이달 초 다시 K7과 5일을 함께했습니다. 역시 처음에 스쳐 지나갔던 아쉬운 점이 하나둘 파악되더군요. 차가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나 재빠르게 반응하느냐를 뜻하는 핸들링 능력과 승차감의 관계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K7의 핸들링은 깜짝 놀랄 정도로 신속했고 커브 길에서 차가 좌우로 기울어지는 롤링 현상, 가속과 감속 때 앞뒤로 출렁거리는 피칭 현상이 스포츠카 수준으로 억제돼 있습니다. 세계 전륜구동 준대형 세단 중 가장 스포티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운전 재미와 운동성을 높이려고 서스펜션을 스포티하게 설계하면 승차감은 나빠진다는 것이죠. 승차감과 핸들링은 일정 부분 반비례 관계여서 자동차회사들은 이 두 가지 상충요소를 어떻게 조율하고 동시에 향상시킬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합니다. 승차감과 핸들링 취향이 운전자마다 달라서 서스펜션 기술이 엔진이나 변속기 기술보다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18인치 타이어가 들어간 K7은 훌륭한 핸들링은 얻었으나 그만큼 승차감을 잃었습니다. 승차감을 희생하면서 핸들링을 높이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내놓는 신차들을 보면 첫인상이 강한 모델이 많습니다. 소비자나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에게 디자인이나 출력, 핸들링 등 자동차를 평가하는 여러 요소를 강력하게 어필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의 요소가 제대로 숙성되지 않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의 좋았던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빨리 인정받고 있은 싶은 현대·기아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깊은 심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급하게 먹다 체하면 안 먹은 것만 못하니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