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 소년’ 스님 유언따라 남긴 책 6권 받아… “길상사에 기증할 것”“만화‘고바우 영감’ 연재 동아일보 등 신문 건네받은 일 빚으로 여기신 듯”
법정 스님의 상좌인 덕진 스님(오른쪽)이 3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 행지실에서 1970년대 초 법정 스님에게 신문을 전했던 강모 씨(왼쪽)에게 법정 스님이 즐겨 보던 책을 전달하고 있다. 강 씨는 얼굴과 이름이 지면에 나오는 것을 한사코 고사했다. 뒤쪽은 법정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 박영대 기자
이날 책을 받은 강 씨는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담이 커 많이 망설였다”며 “책은 나 개인이 아닌 사부대중의 것이니 길상사가 요청하면 조건 없이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덕진 스님은 “강 씨가 기증하는 책은 길상사에 지어질 예정인 법정 스님 기념관에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 “덕진은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동안 상좌 스님들은 법정 스님이 1970∼1973년 봉은사에 머물 때 종무소에 배달된 신문을 스님의 거처인 다래헌까지 가져왔던 소년을 수소문해왔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강 씨는 공양주 보살인 어머니를 따라 절에서 생활했다.
강 씨는 “스님이 내게 책을 남긴 이유를 고민했는데, 아마도 신문을 건네받은 일을 빚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덕진 스님은 “법정 스님이 평소 ‘사소한 시은(施恩·시주의 은혜)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강 씨는 법정 스님에 대해 “강직하고 고고하며 계율에 엄격하신 분이었다”며 “행전(行纏·바지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는 천)을 차지 않고 공양을 했을 때는 바로 참회하고, 한여름에도 옷소매를 손목 위로 올리는 일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강 씨는 “그러면서도 스님은 눈이나 낙엽이 쌓여도 치우지 못하게 하고 그걸 즐기셨던 로맨티시스트였다”며 “내게 24색 크레용과 도화지를 사주셨을 만큼 따뜻한 분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강 씨는 당시 어떤 신문을 전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러 개의 신문을 전했는데, 그중 만화 ‘고바우 영감’이 있던 신문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고바우 영감은 당시 동아일보가 연재한 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다.
강 씨는 “스님의 높은 뜻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봐 걱정”이라며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지면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