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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선영]한의약 ‘천연신약의 보고’ 열려야

입력 | 2010-04-01 03:00:00


지난 40여 년간 신약 개발의 주요 재료는 화학적으로 합성된 물질과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소재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신약으로 허가 받는 의약품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산학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의약품이나 세포치료제 등 새로운 파이프라인의 개발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정작 우리나라가 높은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관심의 부족으로 오히려 주도권을 잃어가는 부문이 있다. 한의약이다.

한의약은 상당수 재료가 식물이다. 그야말로 그린(green) 제품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우리나라의 한의약 정보는 천연물의약 개발의 소중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모 제약회사에서 개발하여 작년에만 85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위염치료제인데 이는 쑥에서 추출한 천연물의약이다. 한의약 분야는 중국을 제외하고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은 날로 그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왜 그럴까?

먼저 서양과학과 한의학이 생산적인 형태로 접목되지 않아서다. 서양과학이나 의학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한의(약)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한의학 종사자는 현대적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 최근 의과학계에서 요란하게 내세우는 시스템의학이니 홀리스틱 접근 방식이니 하는 것들이 한의학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사용한 정체관(整體觀) 혹은 항동관(恒動觀)과 매우 유사함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하늘과 인간이 서로 반응한다는 한의학 핵심 이론인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은 DNA와 환경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현대의학의 방향과 잘 맞는다.

한의학자와 서양 의과학자의 협력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 듯하다. 먼저 많은 한의사가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하게 못 느낀다는 사실이다. 한의대를 졸업하면 의료서비스 종사자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어떤 한의학자는 한의약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의약품으로 개발하면 한의사의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의사는 의사-약사-제조공장으로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데 특정 한의약을 의약품으로 개발하면 한의사의 시장이 잠식된다고 두려워한다. 안타깝게도 한의약을 세계의 주류 과학으로 키우려는 꿈과 능력을 동시에 가진 한의학자가 보이지 않는다.

한의약을 현대화하려면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 약리 기전의 이해, 활성물질의 파악, 원료 물질과 최종 제품의 표준화이다. 이 중 두 가지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도 한의약은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는 해결 의지만 가지면 풀릴 수 있는 숙제이다.

그간 한국의 생명공학 육성정책은 현학적인 논문은 양산했지만 산업적으로 주목할 성과는 거의 내지 못했다. 산업화 경험과 전략적 마인드가 없는 문사가 정책 기획을 주도하다 보니 유명 학술지에 논문 내는 일을 지고의 목표로 삼게 된 결과이다. 막상 우리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의약은 옛것, 그러므로 비과학적인 것으로 경시했다.

한의학은 인류 문명에서 큰 역할을 했던 중국 일본 인도 같은 나라에서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용했던 깊이 있는 학문이며 의술이다. 단순히 서양의학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대체·보완 의학이 아니다. 한의약은 한국바이오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보루 중의 하나이다. 모든 이해 당사자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적극 도전하고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