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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집중분석]부자 전문가가 본 KBS2 ‘부자의 탄생’

입력 | 2010-04-01 15:00:00


돈 새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이신미(왼쪽)와 \'두 번 입으면 굴욕이라며 옷은 한 번만 입는 부태희. 사진제공 KBS


'대한민국 상위 1%' 부자가 될 수 있는 비법 80 가지를 공개하겠다고 나선 KBS2 월화드라마 '부자의 탄생'. '부자의 탄생'은 방영 초반부터 돈 버는 법에 관심이 많은 40대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30일 방송된 10회는 전국 시청률 15.9%(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며 월화극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빚지고도 잘 살아라' '재물에 벌벌 떨어야 재벌' 등 드라마가 제시한 부자 되는 비법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을까. 국내 최초로 부자를 학문적으로 다룬 한동철(52)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부자학'의 관점에서 '부자의 탄생'을 들여다봤다. 한 교수는 2004년 대학에 처음으로 부자학 강의를 개설했고 2007년 부자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지낸 '부자 전문가'.

드라마에서는 부자를 '대한민국 상위 1%'로 정의한다. 하지만 한 교수는 "극중 주인공들은 상위 0.01%에 해당하는 부자다. 현실에서는 일반인들이 만나기 힘든 레벨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마음에서 그리는 부자는 개인 자산 50억원 이상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대한민국 상위 5% 정도를 차지한다.

한 교수는 드라마 속 부자는 부자를 넘은 재벌이어서 실제 부자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주인공들의 철학 생활방식 등 전반적인 부분은 일치하는 대목이 많다고 설명했다.

▶ 낭비 심한 재벌, 절약하는 자수성가형 부자

여주인공 이신미(이보영 분)과 부태희(이시영)는 오성그룹과 부호그룹 회장의 딸, 즉 재벌 2세다. 하지만 부자 아빠를 뒀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생활태도와 사고방식은 극과 극이다.

우선 쇼핑 법부터 다르다. 이신미는 남대문에서 3만 원짜리 옷을 2만5000원으로 깎고 나서야 신용카드를 내민다. 부태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비서를 대동하고 백화점으로 쇼핑을 나선다. 비서의 양 팔에 쇼핑 가방이 주렁주렁 매달린 후에야 쇼핑이 끝난다.

'짠순이'로 대표되는 이신미는 자신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레스토랑을 통째 빌린 추운석(남궁민)에게 "내 돈 뿐만 아니라 남 돈 새는 꼴도 못 본다"며 화를 내고 레스토랑 빌린 돈을 회수하겠다며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한다. 반면 '낭비벽' 부태희는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맞춤 제작한 수 천 만 원짜리 드레스도 딱 한 번만 입는다. 두 번 입으면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다.

실제 부자들 중에는 '짠순이'와 '낭비벽' 중 어떤 유형이 많을까. 한 교수는 부자의 기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고 말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상위 0.01%' 재벌은 낭비하는 이들이 많고 '상위 5%'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절약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그는 "전반적으로 본다면 절약형 부자들이 더 많을 것"이라며 "유명 백화점에서 팔리는 고가의 여성 정장은 부자들이 사는 경우가 많지 않다. 오히려 부자를 모방하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 번 입은 옷 다시 입지 않는 '재벌 2세', 현실에도 있어

두 여주인공을 보면서 떠오른 실제 인물이 있느냐고 묻자 한 교수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두 부류 모두 존재한다"고 답했다. 부태희처럼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는 부자도 있고 속옷은 한번, 겉옷은 세 번까지만 입는 좀 더 '알뜰한' 부류도 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면서 같은 옷이 5벌 있으면 다른 사람이 못 사 입도록 모두 사거나 200만~300만 원 짜리 옷을 사면서 같은 옷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후에야 사는 '선별의식'이 강한 경우도 있다. 또 드라마에서 백화점을 통째 빌려 쇼핑하는 것처럼 영업시간 이후 수 억 원을 내고 백화점을 전세 내어 홀로 쇼핑을 즐기는 부자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 교수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적으로 그만큼의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라며 "고가의 그림은 대부분 재벌가 여성들에 의해 거래되는데 이들은 300명이 안된다고 알고 있다. (부태희처럼 생활하려면) 재산 1000억원, 한달 생활비는 5000만원이 넘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낭비벽이 심한 재벌가 부인이나 딸은 실존하지만 근검절약하는 재벌가 딸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단 이신미 같은 재벌가 부인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10대그룹 회장 부인 가운데 두 명이 그렇다고. 이들 중 한 명은 남대문에서 산 가짜 가방을 들어 중견그룹 회장 부인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한 명은 성북동에 사는데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고 한다. 한 번 장을 보는 금액은 3만원 정도.

▶ 직장인이 부자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재벌 아버지가 남겼다는 목걸이 하나만 믿고 '예비 재벌 2세' 행세를 하고 다니는 최석봉. '부자의 탄생' 중 한 장면.


부자아빠를 찾아 부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인 남자주인공 최석봉(지현우). 그는 '예비 재벌 2세'인 만큼 사업체를 물려받을 것에 대비해 경영학을 전공하고, 부자들의 행동 습관을 미리 익혀둔다. 한시라도 빨리 재벌 아버지를 만나려고 재벌들이 자주 드나드는 호텔에서 근무한다.

그러다 아버지 찾기가 쉽지 않자 결국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부자가 되기로 결심. 부자가 되기 위해 유명 카드사 마케팅팀에 입사한다. 과연 최석봉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한 교수는 부정적이었다. 우선 부자가 되려면 '내 사업'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 직장을 키워주는 것이지 내가 크는 것은 아니다. 부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부를 쌓아야 한다"며 "자기 사업이 아니라면 회사에서도 실적에 따라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영업 쪽 일을 해야 '나의 부'를 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카드사에서 일하려면 최소한 영업부서로 옮겨야 한다는 것.

반면 최석봉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재벌 이신미 부태희 추운석과 자주 어울리는 것은 부자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한 교수는 최석봉의 "부자들이 죽어도 하는 일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을 알아내 하나도 놓치지 말고 샅샅이 배워라. 누구랑 무얼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내라"는 대사에 동감하며 "부자가 되는 법은 부자를 만나 직접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부자 되기, 학벌과는 관계없다

부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부자는 일반인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 한 교수는 "너는 몰라. 대한민국 상위 1%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이신미의 대사에 공감을 표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부자는 일단 남이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 부자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많이 하고 부에 대한 욕심이 크며 실행력이 강하다. 반면 일반인은 꿈, 욕심이 작고 실행력도 약하다.

드라마의 설정 가운데 현실과 동떨어진 점으로 한 교수는 주인공 모두 최소 대졸자라는 대목을 꼽았다. 이신미 추운석은 유학파이고 최석봉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부태희는 잔디를 깔고 들어가긴 했지만 엄연한 대졸자이다.

그는 "부자 되는 것과 대학가는 것은 관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부자들은 대학 졸업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부자학회에서 부자 16명에게 상을 줬는데 이들 중 10명이 대학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부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절반 이상이 부자 되는 것과 대학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사농공상' 의식이 뿌리 깊어 '선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자는 '공'과 '상'이 되는 것이다."

이 밖에 드라마에서 제시한 '처세술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는 비법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부정적이었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클 때 처세술이 필요한 것이지 자신의 가치를 개발하는 데는 처세술이 중요치 않다는 것. 흔히 부자는 외톨이라고 하지만 부자는 원래 외로운 것이다.

드라마는 '부자가 되려면 책보다 사람을 파라'고 설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고 나는 것'이다. 부자들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감각이 다르다. 교육이나 학습으로 익힐 수 없는 선척적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부자가 되려면 드라마가 조언한 대로 '째째해지기' 보다는 '째째해 지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실제 부자들은 아반테를 끌고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한 교수는 드라마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빠진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는 "부자가 탄생하는 순간 의도했든 안했든 누군가에겐 타격이 있기 마련"이라며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가 한 권 탄생하면 같은 분야의 다른 책들은 팔리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다면 돈을 벌었으니 타격을 입은 이들에게 돈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자가 되는 비법대로 하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비법을 따르기만 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비법을 알려줘도 실행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부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비법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