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로버트 J 스턴버그, 카린 스턴버그 지음·김정희 옮김/368쪽·1만5000원·21세기북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을 피에 굶주린 괴물로 묘사한 미국의 신병 모집 포스터. 곤봉에 적힌 ‘Kultur’라는 단어는 독일 문화, 특히 나치시대 국민정신 고양에 사용된 정신문명을 일컫는다. 이처럼 상대를 위협적인 존재, 악행을 즐기는 도덕적 타락자로 묘사하는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은 상대를 증오하게 된다. 사진 제공 21세기북스
평범한 사람도 악인(惡人)으로 만드는 증오는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심리학자인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증오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이 증오가 어떻게 지속, 증폭되는지를 탐구한다.
이들은 증오라는 감정을 삼각형 모델로 설명한다. 사랑이 ‘친밀감-열정-결정·헌신’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되듯이 증오 역시 ‘사랑의 삼각형’에 대비되는 ‘증오의 삼각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요소는 단 하나다. 친밀감 대신 ‘친밀감의 부정’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증오는 이야기를 가진다는 점에서 더 강력하다. 적을 낯선 사람, 권위주의자, 도덕적 타락자로 설정하거나 신에게 버림받았다거나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묘사하는 등 증오를 정당화하는 일종의 이야기 구조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유대인 박해와 부족학살로 본
친밀감의 부정-열정-결정·헌신
증오 막으려면 편견 벗어나야
피해 입었을 경우 ‘용서’가 대안
르완다 대량학살의 비극은 르완다가 벨기에에 점령됐을 때부터 시작됐다. 벨기에는 통치 편의를 위해 소수민족인 투치족은 우월하고 다수민족인 후투족은 열등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투치족을 지배층으로 내세웠다. 이전까지 평화롭게 함께 살던 두 부족의 관계는 악화됐다.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은 두 부족의 신화를 미묘하게 조작해 투치족을 오래전 르완다로 이주해온 이질적 인종으로 묘사했다. ‘낯선 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기 시작한 것이다(친밀감의 부정). 후투족 지도자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후투족은 이를 투치족의 소행으로 돌리고 라디오 방송으로 복수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열정). 투치족 군인들이 후투족을 살해해 인육을 먹거나 여자를 강간한다는 내용이 연일 라디오 방송을 탔다. 투치족을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강조해 증오를 정당화한 것이다. ‘아이들을 공격하는 탐욕스러운 전사’ ‘사회 조직을 위협하는 괴물’ 등의 이미지가 투치족에게 덧씌워졌다(결정·헌신).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