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의 렌즈/이경민 지음/352쪽·1만8000원·산책자
1909년 함경도 경성군 운곡학교. 일군의 군민이 여기 봉안된 순종의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근엄해야 할 황제의 모습이 단발(斷髮)이었기 때문이다. 군주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백성들이 놀라고 분노한 나머지 황제의 사진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한국 근대기의 사진은 그랬다. 사진은 근대를 만나는 통로였지만 이처럼 깊은 상처가 배어 있다. 대한제국 황제의 사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고종의 사진은 서양인과 일본인이 주로 촬영했다. 고종의 사진은 고종의 생각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제의 의도가 개입됐기 때문에 황제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이었다.
1907년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된 뒤 이완용 내각과 찍은 사진도 그러한 경우. 일본인 사진가가 찍은 이 사진은 화면 한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고종이 보인다. 인화된 이 사진은 여러 장이다. 어떤 사진은 고종의 신체를 자른 채 인화했고 어떤 사진은 고종을 아예 지운 채 인화했다. 대한제국 황제의 몸을 함부로 다룬 것이다.
어사진의 이미지 왜곡, 이 모든 것은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 결국 이토는 사진 속 황제를 어설픈 ‘식민지 군주’의 이미지로 표상화했다. 이토는 이 같은 이미지로 조선을 침탈하려 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강점기 일본 건축학자 세키노 다다시의 한국 건축문화재사진, 일본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의 한국인 신체 사진에 나타난 침략의 흔적도 살펴보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