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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구자룡]“그걸 압록강 건너봐야 안답니까”

입력 | 2010-04-05 03:00:00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1일, 기자는 그가 오면 반드시 지나는 길목인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에 왔다. 북한과 압록강을 국경으로 하는 단둥은 중국 대북무역의 70%가량이 이뤄지는 곳이고, 북한으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석유가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 유일한 곳이다. 인구 76만 명의 작은 변경도시지만 용천 열차 폭발사고, 탈북자 급증 그리고 핵실험 등 북한에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북한을 보는 창(窓)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단둥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기다리면서 압록강을 따라 하류를 오르내리며 압록강 가운데 있는 일부 북한 땅이 ‘경제적으로 곧 중국에 흡수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은 압록강을 따라 서해와 만나는 둥강(東港)까지 ‘단둥 신도시’ ‘중조경제합작구’ ‘장비제조공업구’ ‘둥강 항구 공업원구’ 등의 개발 계획을 세워놓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중 ‘중조경제합작구’로 설정한 곳은 지금은 북한 땅인 황금평 지역. 압록강 흐름으로만 보면 중국 쪽에 붙어 있는 땅이다. 중국은 50년 장기 임대 등의 방식으로 이곳을 단둥 신도시와 통합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압록강에는 황금평이나 비단섬처럼 중국과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 땅인 곳이 많다. 이는 1961년 중조우호조약을 맺을 때 정해진 것으로 중국이 동맹국 북한을 배려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강을 건너와 버려진 땅을 일구며 생활 터전으로 삼은 것이 더 큰 배경이다. 그런데 북한이 50여 년의 폐쇄체제로 정체돼 있는 반면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이제 경제적으로 그 땅을 되찾아갈 태세가 된 것이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명나라 원정의 말머리를 돌려 회군한 곳으로 알려진 위화도도 북한 땅이지만 중국에 장기 임대해줘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위화도는 단둥 철교에 인접한 압록강 상류에 있다.

실제로 올해 10월 착공하는 ‘제2압록강대교’가 놓일 중국 쪽 예정지에는 단둥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합의한 것이다. 단둥 신도시에는 싱가포르나 홍콩 마카오 자본이 진출해 고층 아파트도 올라가고 있다. 시 청사 건물은 이미 외부 콘크리트 구조물이 완공됐다. 다리로 이어질 단둥 신도시에는 왕복 8차로 도로도 닦여 있었다. 다리만 완공되면 건너 용천이나 신의주와 금방 닿는다.

단둥에는 신의주와 평안북도 등에서 건너온 조선족 동포 1만5500명가량이 살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동포들이 중국에 있는 가난한 친척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 건너로 넘겨다 본 현재 신의주는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이다.

기자가 “이번에 김 위원장이 오면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중국의 발전 지역을 둘러보려고 할지 모른다”고 하자 단둥의 한 교포는 이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걸 압록강을 건너봐야 아나. 더구나 새벽에 몰래 기차 타고 다닐 필요가 뭐 있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단둥에 높은 빌딩과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강 건너로 보기만 해도 알 것을 말이다.”

단둥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니 정치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과 운명이 ‘신의주와 단둥’처럼 극명하게 달라졌으며 달라질지 곱씹게 된다. ―단둥에서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