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업을 처음 받던 날, 담임선생님이 인사를 하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시는 거예요. ‘왜 수업 안하시지?’란 생각에 의아하고 당황스러웠죠. 그 10분 뒤 ‘천정명’(미남 탤런트 이름)을 닮은 ‘샤방한’(‘잘 생긴’이란 뜻의 신세대 은어) 남자선생님이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담임선생님이 바뀐 줄 알고 엄청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국어선생님이었어요.”(류모 양)
중1이 된지 한 달이 된 류 양(13·경기 남양주시)은 중학교에선 수업시간마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한편으론 ‘이 과목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하고 수업을 기다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수업마다 선생님이 다르다는 사실은 이내 고민거리가 됐다.
예를 들어보자. 국어선생님의 경우 ‘외모=깔끔함, 성격=치밀하고 계획적임, 목소리=작고 낮음, 말투=나긋나긋함, 수업방식=농담 전혀 없이 오로지 설명’이란 내용을 작은 노트에 따로 정리해 놓은 뒤 이런 사실들을 종합 고려해 ‘국어시간엔 졸리기 쉬우므로 눈이 감길 때마다 손등을 꼬집을 것’이란 대처법을 세웠다. 또 ‘목소리가 크고 말투가 쾌활하며 학생들의 수업참여를 중요시 해 질문을 많이 하는 과학 선생님’의 수업에도 대비했다. 수업 전 교과서에서 그날 배울 부분을 미리 읽어보고 예상되는 선생님의 질문을 뽑아 답변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 류 양은 “지금은 학교에 있는 거의 모든 선생님의 ‘데이터’를 갖췄다”고 말했다.
중2 안모 군(14·서울 동대문구) 역시 1학년 초에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님들의 수업방식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안 군이 특히 어려움을 느낀 것은 국사수업.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진 ‘필기량’ 때문이었다. 국사선생님은 칠판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고선 왼쪽 위모서리부터 오른쪽 밑모서리까지 칠판 가득 필기를 했다. 안 군은 “선생님의 필기속도가 빠른데다 분량까지 엄청나게 많아 모두 받아 적고나면 손목이 아팠다”며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린 탓에 필기를 다 하기 전 수업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필기도 다 하고, 수업도 모두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안 군. 한참을 고민 끝에 그는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안 군은 우선 온라인 쇼핑몰에서 7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MP3플레이어를 구입했다. 행여 수업시간에 녹음하는 것을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도록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초소형 모델을 택했다. 자리가 맨 뒤여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녹음되지 않을 것이 우려됐다. 그래서 친구에게 빵을 사주고 ‘매수’하는데 성공해 국사시간이면 3분단 2번째 자리인 친구와 자리를 바꿀 수 있었다. 안 군은 “집에 돌아와서 녹음된 수업내용을 찬찬히 반복해 들으니 필기하느라 수업 때 놓쳤던 설명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필기도 완벽하게 하고 수업내용도 완벽하게 들을 수 있단 생각에 국사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