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관료들 입장차 커
한국인에게 외규장각 도서가 갖는 상징적인 가치, 그 역사적인 가치보다 더 강력한 이 가치를 프랑스는 처음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프랑스 박물관은 세계에서 약탈한 이런 유의 서적으로 가득 차있다. 마침내 파리가 외규장각 도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 서울에 한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합의한 한국 전시를 위한 대여 원칙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다시 거의 영구적인 대여, 다시 말해 반환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것에 갈음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상황의 진전을 막는 것은 정부보다는 두 나라 사서들의 관료적 행태다. 프랑스의 일부 사서들은 아무리 사소한 서적일지라도 반환을 거부하는 반면 한국의 일부 사서들은 반환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서울과 파리에 양국의 관료적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가지 해결책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논의의 출발점으로 프랑스와 한국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며, 한국 문명을 알리는 대규모 전시를 파리에서 열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자. 한국의 문명은 프랑스에서 더 잘 알려질 가치가 있다. 사실 이런 전시가 프랑스에서 열린 적이 없다. 이는 한국의 국립박물관이 걸작 문화재를 외국에 알릴 기회가 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도 상응하는 전시를 서울에서 열 수 있다.
상시적 문화재 교류가 해답
이런 교류의 틀 속에서 관심 있는 프랑스인과 한국인 모두에게 외규장각 도서에 접근하는 길을 여는 것이 그것을 누가 보유하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에 대여돼 한국에 남아있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재들은 인류 공동의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외규장각 도서를 둘러싼 대립에서 벗어나는 길은 축제의 정신을 갖고 수준 높고 상시적인 문화 교류를 한다는 생각으로서만 가능하다. 프랑스 격언에 ‘전쟁은 군인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외규장각 도서는 법률적 해결만 추구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외규장각 도서를 둘러싼 오해의 해결을 양국의 현자(賢者)들로 구성된 모임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모임에는 외교관 사서뿐만 아니라 예술문화계의 대표자도 참여하도록 하자. 양국 관계를 걱정하는 현자들이라면 화해와 문명 간 대화의 길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