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향남제약공단 어린이집
“보육료 싸고 오후 7시까지 운영… 공단 세심한 배려 믿고 맡겨요”
절반정도가 지역주민 자녀…공단측 운영비 30% 지원
보육부담 덜어낸 주민들…공단에 취업하거나 부업
제약시설 견학 아이들 “나중에 커서 과학자 될래요”
《네 살, 다섯 살 딸을 둔 주부 주미영 씨(30·경기 화성시 향남면)는 최근 셋째를 낳았다. 보육 부담이 컸는데도 과감히 셋째를 가진 것은 인근 향남제약공단 어린이집에 두 딸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 씨는 큰아이가 8개월 됐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향남공단 어린이집이 공단 소속 회사의 직원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이 둘을 보냈다. 이후 주 씨는 펠트와 테디베어 공예를 배웠다. 오후 2, 3시면 끝나는 지역 어린이집과 달리 공단 어린이집은 공단 직원의 퇴근시간(오후 6∼7시)까지 아이를 돌봐주기 때문에 수공예를 배울 여유가 생긴 것. 주 씨는 만든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팔아 어린이집 비용과 생활비 일부를 벌고 있다. 주 씨는 “두 아이를 오후 내내 맡길 데가 없었다면 셋째를 갖는 것도, 수공예 부업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직장보육시설
경기 화성시 향남공단 내 직장보육시설인 ‘향남공단 어린이집’ 원생들이 공단 내 대웅제약을 찾아 비커에 약품을 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공단 입주 업체 직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아이도 받아들이고 있다. 화성=전영한 기자
공단 근처에 향남 택지지구가 들어서면서 지역 어린이집이 적지 않게 생겼다. 시설만을 놓고 보면 공단 어린이집을 훨씬 앞선다. 그럼에도 공단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지역주민들이 있는 것은 오후 내내 아이들을 돌보는 직장보육시설만의 장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을 위한 배려도 세심하다. 공단 직원들은 대부분 오전 7시∼8시 반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다. 공단 어린이집은 직원보다 생활리듬이 늦은 지역주민의 자녀들을 위해 오전 9시 20분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어린이집이 공단 내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공단 입구에서 내려 한참 걸어 들어와야 하는 불편도 해소했다.
공단 조합에서 운영비의 30% 이상을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어린이집보다 월 보육료가 저렴하다. 만 3세 아동의 경우 국가 책정액은 월 27만8000원이지만 이곳에서는 25만 원이다. 공단근로자는 할인율이 더 높아 21만 원을 낸다. 향남공단 어린이집 아동의 절반은 정부에서 차등보육료 지원을 받는 서민층 가정 출신이다. 두 아이를 보낸다면 매월 4만4000원에서 13만6000원까지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공단 어린이집은 조합 사무실 건물 2층에 있다. 교실 4개짜리 소규모 시설이다. 10년이 넘은 시설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허름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 앞에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인근 동산 등은 여느 보육시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학습장이다. 고 원장은 “공단 내 모든 시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공단 터 20만 평이 어린이집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공단 직원들이 마련해 준 공단 내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봉숭아꽃을 따 손톱에 물을 들인다. 가을이면 멀리 갈 것도 없이 공단 곳곳에서 단풍 구경을 하고, 감나무에서 감을 따 나눠 먹는다. 메뚜기와 방아깨비, 무당벌레와 달팽이 등이 지천이어서 따로 책을 보며 공부할 필요가 없다.
두 아이를 공단 어린이집에 맡기는 신혜숙 씨(34)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댁에 맡겨 키웠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얼른 달려가 보지 못해 마음고생이 많았다. 일터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아이와 함께 출근한 뒤로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아이가 아플 때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접 병원에 데려갈 수 있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어린이집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의 등나무 쉼터는 점심시간마다 신 씨 같은 엄마들로 붐빈다. 점심을 먹고 어린이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러 오기 때문이다. 제약 공장의 특성상 이들은 여러 차례의 소독 과정을 거쳐 특수복을 입고 ‘클린 룸’에서 일한다. 이런 작업 환경 때문에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일터에서 몸을 빼기가 쉽지 않다. 공단 근로자들에게는 일과 중 잠시라도 아이들을 챙겨 볼 수 있는 직장 보육시설이 소중하다.
“어린이집 운영은 기업의 사회 공헌… ‘따뜻한 공단’ 신뢰 쌓여”
■ 어진 공단조합 이사장
어진 향남제약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안국약품 사장·사진)은 “공단 소속 기업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오고 싶은 어린이집이 되도록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당시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향남제약공단 조성을 주도한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의 장남이다.
“공단에 오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공단의 첫 이미지가 삭막함이 아니라 따뜻함이 될 수 있는 거죠. 어린이집 운영은 경영적 계산을 뛰어넘는 효과가 있습니다.”
향남공단 어린이집도 수지타산만 따지면 계속 이어 가기가 힘들다. 2007년 노동부가 직장보육시설 지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들의 44.6%는 지속적인 운영비 부담을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았다.
향남공단 어린이집 역시 공단 소속 근로자의 수요가 매년 달라 정부 지원금 액수가 들쑥날쑥하다. 또 고용보험이 없는 지역민까지 받아들이고 있어 지원금이 다른 곳보다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조합 지원금이 없으면 어린이집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0년 전체 운영 예산 2억 원 가운데 6600만 원이 조합 전입금이다.
어 이사장은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직원이 없는 기업에서 운영비 지원에 대해 간혹 불만을 내비치지만 조합의 전입금 규모를 매년 조금씩 늘리고 있다”며 “어린이집은 지역 사회에 대한 사회 공헌 사업일 뿐 아니라 가장 우수한 여성 인력을 유인하고 회사에 대한 근로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 이사장은 공단 특성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양한 기업이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그만큼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합니다. 소속사 본사 견학이나 의사 약사 등의 일일교사 활용, 협력 병원 방문 등 제약공단만 할 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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