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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으로… 南으로… 먹이찾아 삼만리

입력 | 2010-04-07 03:00:00

파주 - 철원의 독수리들 가축전염병 파동에 먹이 뚝…
작년부터 수백마리씩 경남 고성에… 일부는 광양 - 순천 - 일본까지

고성교사, 10년째 먹이 챙겨주는 등
주민들 보호해도 차에 치여 죽기도
인간 - 독수리 공존해법 찾아야




사진 제공 고성군 철성고 교사 김덕성 씨

《최근 몇 년 동안 독수리들의 월동(越冬) 지역이 경기 파주, 강원 철원 등 중부지방에서 점차 남부지방으로 퍼지고 있다. 올해 겨울 경남 고성에선 한국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의 4분의 1 정도인 500여 마리가 몰려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왜일까. 생태 환경의 변화를 독수리들의 입을 통해 풀이해 봤다.‘우리는 독수리입니다. 몽골에서 태어나 추운 겨울을 한국에서 보냅니다. 우리 종족은 전 세계에 1만2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멸종위기종이라 부릅니다. 한국에서도 천연기념물(243-1호) 대접을 받는답니다.

남해 바다에 인접한 경남 고성군 고성읍과 개천면, 대가면 일대 주민들은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하늘에서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날개를 펴면 2∼3m나 됩니다. 무게도 6∼14kg이 나갑니다. ‘한 덩치’ 하는 우리들이 검은 갈색 날개를 펴고 수십, 수백 마리씩 하늘을 날면 거짓말 좀 보태서 고성 하늘이 까맣게 덮이죠. 몇몇 주민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 독수리의 마이너리그 고성

10년 전만 해도 우리들은 고성까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무려 500여 마리가 고성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얼마 안 된다고요? 전 세계에 있는 우리 독수리 종족 전체의 4%나 되는걸요. 인구가 65억 명인 사람으로 치면 고성이 인구 2억6000만 명의 대국(大國)이 된 셈입니다.

우리가 고성을 찾는 이유는 뭘까요. 과거에 우리는 파주 장단반도나 철원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전성기 땐 2000여 마리까지 모였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먹을 것이 점점 준 것이죠.

독수리들은 철저히 서열에 따라 먹이를 먹습니다. 무리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배를 채울 때까지 감히 먹이에 입을 대지 못하죠. 5세 이상 된 ‘힘센 어른’들은 힘들게 먹이를 찾아 고향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몽골에서 그냥 겨울을 납니다. 하지만 1∼4세의 어린 독수리들은 겨울이면 한반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 가운데서도 그나마 힘센 녀석들이 북한이나 중부지방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가 전국에 퍼진 겁니다. 그중 유독 고성에 독수리가 많이 모였습니다. 지난해 2월엔 장단반도나 철원보다 많았습니다. 고성이 독수리들의 대표적인 ‘마이너리그’가 된 셈입니다. 아, 물론 우리는 그나마 ‘트리플A’는 됩니다. 고성에서도 밀려난 녀석들이 전남 광양, 순천이나 일본에서도 조금씩 발견된다고 하니 혹시라도 만나면 가엽게 여겨주세요.

먹이가 줄어든 것은 구제역과 같은 동물 전염병 때문입니다. 가축이 죽으면 태우거나 깊이 묻는 바람에 동물 사체(死體)를 먹고사는 우리의 먹이가 자취를 감춘 것이에요.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고기를 나눠주던 지역 주민들도 줄고 있답니다. 우리의 생태를 연구하는 백운기 국립중앙과학관 연구관은 “2006년 이후 한국을 찾는 독수리의 20∼30%가 남부지방으로 분산되고 있다”며 “인위적으로 먹이를 줘 관리하되 적절히 분산시키는 것이 좋다”고 말하더군요.

○ 사람과 부대끼며 위협 받는 독수리 생태

2009년 2월 주요 월동지를 찾은 독수리 현황 (단위: 마리)

독수리들이 다른 곳이 아닌 고성을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결식아동’이라 부르며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철성고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김덕성 선생님(58)입니다. 선생님은 매일 정육점에서 돼지비계나 껍질 등을 가져다가 학교 앞 빈 논에서 수백 마리에게 먹이를 줍니다.

벌써 10년째입니다. 몇몇 독수리는 선생님을 알아보고 경계를 풉니다. 성큼 다가와 손으로 내주는 먹이를 덥석 받아먹죠. 예민한 우리 습성상 드문 일입니다. 선생님은 1300km를 넘게 날아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요즘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며 넉넉하게 먹이를 챙겨줍니다. 부리가 약한 까마귀들이 먹이를 빼앗아 먹지 못하도록 고기 덩어리를 두껍게 잘라주는 센스도 있는 분이죠.

처음엔 “겁이 난다”고 했던 고성 주민들도 점점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최근엔 자신들의 재산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일부 지역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며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기엔 어려운 환경이 많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고성읍 이당리의 천황산 기슭에선 폐기물 처리시설을 만든다며 포클레인이 굉음을 냅니다. 얼마 전에는 이륙을 위해 도움닫기를 하던 독수리 한 마리가 국도를 달리는 차에 치여 목이 부러지는 ‘로드킬(road kill)’을 당하기도 했죠.

과거에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인 장단반도나 철원에 머물 때는 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성=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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