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백수’에겐 꿈도 이념도 사치
다방 ‘제비’ ‘학’ 등의 경영에 실패하자 이상은 구본웅의 제의로 1936년 창문사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구인회 동인지의 창간호이자 폐간호가 된 ‘시와 소설’ 첫 호를 펴낸 뒤 이곳에서도 퇴사한다. 왼쪽부터 창문사 시절의 이상과 박태원, 김소운. 사진 제공 소명출판
폐결핵 진단을 받고 1933년 총독부를 사임할 때까지 4년여를 제외하고 그는 평생 고정적 수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총독부 기사직에서 물러난 뒤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서울 종로1가 조선광업소 1층을 세내 ‘제비’를 개업했다. 금홍을 제비 다방의 마담으로 불러와 3년간 동거하였다. 그러나 ‘제비’ 다방을 개업했다고 해도 경제적 번창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동생인 김옥희 여사는 당시 풍경을 아래와 같이 술회하였다.
총독부 생활 4년만에 접고
다방 등 벌인 사업마다 실패
간혹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큰아들 노릇을 하던 해경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란 말대로 ‘제비’ 경영에 실패해 명도소송을 당한 끝에 1935년 폐업했다. 그 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카페 ‘학’을 인수하여 경영하기도 하고 종로1가에 다방 ‘69’를 설계하여 개업했으나 이것도 곧 실패하고 다시 명동에 다방 ‘맥(麥)’을 경영하려고 하다가 개업하기도 전에 남에게 양도당하고 말았다.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한 해경은 홀연히 서울을 떠난다. 친구들은 종로, 혼마치(本町) 등을 모조리 뒤졌으나 그를 찾을 수가 없어 혹시 자살한 게 아닌가 무척 걱정들을 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그’는 카페 여급인 아내를 뜯어먹고 살고, 아내는 손님들의 돈을 뜯어먹고 산다. 아내는 A취인점(거래소)의 전무인 뚱뚱보가 자꾸 자기를 말라깽이라고 부르자 “양돼지”라고 내뱉고 만다. 화가 난 전무는 아내를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게 만들고 카페 직원들은 전무를 경찰에 신고한다. 전무는 A취인점 주임이자 ‘그’의 친구인 오 군을 통하여 위자료 이십 원을 준다. 오 군은 언젠가 ‘그’에게 “백 원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우선 석 달 만에 백 원 내놓고 오백 원을 주마”라며 돈을 받아가 놓고 그 후 일절 답이 없는 친구다. 오 군은 아내를 버리고 서울로 온 뒤 뚱뚱하고 생명이 이글거리는 마유미의 기둥서방으로 살고 있다. 남의 돈을 떼어먹으며 취인점을 경영하고 돈을 불리면서 너무도 생동생동 살고 있다. 그날 밤 아내가 받은 위자료 중 십 원을 쥐게 된 ‘그’는 그 돈으로 마유미를 만나러 달려간다.
극심한 생활고 겪으며
날 로 피폐해지는 영혼 그려
“손가락을코밑에가져다가가만히맡아보았다.거미내음새는-그러나십원을요모저모주무르던그새큼한지폐내음새가참그윽할뿐이었다. 요새큼한내음새-요것때문에세상은가만히있지못하고생사람을더러잡는다-더러가뭐냐.얼마나많이축을내나.가다듬을수없이어지러운심정이었다.거미-그렇지-거미는나밖에없다.보아라.지금이거미의끈적끈적한촉수가어디로몰려가고있나-쭉소름이끼치고식은땀이내솟기시작한다.”(‘지주회시’)
김승희
김승희 시인·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