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초중고교생도 스펙 쌓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참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여기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수상실적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교육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데요. 정부규제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찬반양론을 읽어보고 독자 여러분도 생각을 정리해 보시지요.》
[찬성]‘입시 스펙쌓기’ 방지에 필요
창의성 없이 입상만 노리는 사교육 줄어들 것
다양하고 화려한 수상 경력이 한국 초중고교생의 스펙이 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가 주목받고 주요 대학의 입시 전형이 다양화되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수학·과학올림피아드와 영어경시대회 등 성적이 진학의 핵심 요소로 알려졌고 대학과 연구기관은 물론이고 사설단체까지 가세해 학력대회를 경쟁적으로 열었다. 사교육업체는 대회와 진학 실적을 과시하며 과외를 부추겼고 자식교육에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학부모가 몰리면서 사교육이 확산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번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내용과 기준을 엄격하게 만든 1차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앞으로 고입과 대입에서 학생부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학생부에 누적 관리된 수상 경력은 신뢰할 수 있는 전형 자료가 될 수 있기에 그냥 두면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최선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학부모에게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린 학생들은 온갖 과외로 내몰리고 사교육비는 폭증한다. 특히 저소득층은 더 어렵게 되고 교육격차가 확대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입시 과열을 불러 사교육을 유발하는 교과와 관련된 교외 수상실적을 학생부에 기록할 수 없도록 하려는 교과부의 방침을 지지한다. 교과 성적과 교내 수상을
중시하며 중학교에서부터 독서활동을 기록하게 한 것도 학교교육 내실화를 위한 옳은 조치다. 다만 내신 성적 때문에 더 치열한 과외가 예상되고, 학생 선발이나 수상과 관련하여 치맛바람이나 비리가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이 염려된다. 자녀 입시에 직결되는 교육감상을 받으려고 기를 쓰는 학부모를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진학 수단으로 전락한 입시용 스펙은 비교육적이며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교과부 방침대로라면 김연아 선수의 국제대회 우승 실적도 학생부에 남길 수 없다. 학창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활동은 인생에서 소중한 자산이며, 특기와 적성을 계발하고 창의성과 잠재력을 키울 수 있기에 여전히 중요하다. 수상은 학생의 성장을 격려하고 동기 부여를 위해 필요하다.
기록은 하되 입시용으로 쓰지 않도록 보완한다면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아니라 발전적인 교육지책(敎育之策)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장중 교육과사회연구소 소장
[반대]교사-대학이 판단하게 해야
선발 가산점 줄지는 입학사정관이 가려낼 몫
시중에 범람하는 경시대회 중에는 다분히 상업적인 것도 있고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도 있다. 어떤 경시대회는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신장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학교와 교사의 몫이다.
이를 교과부가 통제하겠다고 나섰으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교과부의 행태를 보노라면 마치 이 나라 교육의 지상과제는 사교육의 경감이고 교과부는 사교육 잡는 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부는 특히 사교육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상을 준다.
더구나 교과부가 제시한 세부지침을 보면 실소가 나오다 못해 측은지심이 들 정도다. 효행상이나 봉사상은 기재 가능하지만 이를 주제로 하는 글짓기대회의 수상 실적은 기재 불가하다는 대목이 한 예이다. 이러니 교과부의 할 일이 그렇게도 없냐는 식의 조롱 섞인 비난이 나온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기상천외의 방안을 강구하기에 앞서 사교육이 창궐하는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결론은 명백해진다. 학교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면 학부모와 학생은 사교육보다는 학교를 신뢰하고 사교육은 자연히 경감된다. 현 시점에서 교과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사안은 교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학생부의 기록은 학교와 교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미국에도 경시대회가 많은데 수준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수상경력을 기록하는 일은 학생과 교사의 몫이며 최종적인 판단은 선발자인 대학이 한다. 미국의 경우 특별한 수상 경력없이도 명문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많다. 오히려 잡다한 수상 경력의 기재는 역효과를 낳는다. 우리도 선발자에게 일임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입학사정관제의 근본적인 취지이다.
요즘 들어 나라의 품격을 뜻하는 국격이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된다. 국격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정부의 정책이다.
국민을 어린아이 취급하고 학생부에 기재되는 세부내용까지 통제하는 정책이 국격을 얼마나 손상시키는지에 대해 교과부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