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의 ‘주꾸미’에서>
주꾸미의 고향은 소라껍질이다. 그곳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 주꾸미는 늘 소라껍질을 그리워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곳에 가고 싶다.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가 셔터를 내린다. 힘들 때도 그 속에 들어가 운기조식한다. 알을 낳을 때 그곳에 들어가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소라껍질은 주꾸미가 태어난 자궁인 것이다.
봄 주꾸미(도다리), 가을 낙지 문어(광어 전어)다. 주꾸미 낙지 문어는 팔이 모두 8개 있는 문어 문중의 삼형제다.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는 팔이 10개인 꼴뚜기 문중이다. 강원도는 오징어, 경상도에선 문어, 충남 서해안에선 주꾸미, 호남 서남해안에선 낙지를 즐긴다. 문어 문중에선 주꾸미(20cm)가 가장 작다. 문어(3m)가 팔척장신이고 낙지(70cm)가 그 다음이다. 주꾸미는 머리(몸통)와 발이 딱 붙은 ‘숏다리’에 이름마저 쭈글쭈글하다.
주꾸미는 맛있다. 누가 뭐래도 꽃피는 3, 4월엔 으뜸이다. 이때쯤이면 주꾸미가 한창 알을 깔 때다. 먹통에 쌀밥(밥알)이 터질 듯 가득하다. 한입 깨물면 오도독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진다. 탱탱 불어터진 목련꽃봉오리가 투두둑 터지는 듯하다. 고두밥을 씹는 듯도 하고, 김이 펄펄 나는 고슬고슬한 무쇠솥 밥을 먹는 것도 같다. 숭늉처럼 구수하다. 오도독 씹힐 땐 미더덕처럼 향긋 알싸하다. 밥알은 주꾸미의 알이다.
소라껍질에 들어가 몸을 푸는 주꾸미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암놈이다. 그렇다면 암놈만 잡힌다는 얘기인가? 쌀알이 없는 수컷들은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까? 천만의 말씀. 사실 자루 모양의 그물로 잡는 주꾸미가 소라껍질 방식보다 그 양이 훨씬 많다. 그물로 잡으면 암수는 물론이고 크든 작든 모조리 산 채로 끌려나오게 돼 있다. 소라껍질 방식은 주꾸미 크기가 일정하고, 암컷이 주로 잡힌다는 장점이 있다.
주꾸미는 회로 먹고, 무쳐먹고, 데쳐먹고, 삶아먹고, 볶아먹고, 구워먹는다. 삼겹살과 섞어 구워먹는 주삼불고기까지 있다. 그만큼 요리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회나 샤부샤부가 으뜸이다. 살짝 데쳐 회로 먹을 땐 먹통의 검은 먹물에 찍어 먹는다. 먹물에 라면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사람도 있다.
주꾸미는 살짝 데쳐야 한다. 오래 삶으면 딱딱해지고 맛이 사라진다. 몸통이 붉은색으로 변할 때가 불을 끌 시점이다. 주삼(주꾸미+삼겹살)볶음 땐 삼겹살을 먼저 익힌 뒤, 주꾸미를 살짝 데쳐야 궁합이 맞는다. 볶음이 매울 땐 카레에다 찍어 먹으면 덜하다.
주꾸미 철판볶음은 주꾸미에 야채 쑥갓 시금치 들깨를 섞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쳐서 살짝 볶아야 한다. 주꾸미 영양돌솥밥도 있다. 굴 전복 밤 대추 등을 넣어 밥을 하고, 나중에 주꾸미를 넣어 살짝 데친다. 그 다음 달래장으로 비벼 먹으면 바로 주꾸미 달래장 비빔밥이다. 양념을 적게 해야 주꾸미의 본래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꾸미 명인도 있다. 충남 서천군 마량포 동백정 앞 서산회관(041-951-7677)의 김정임 씨가 바로 그 주인공. 40년 경력의 김 씨는 ‘그만의 된장육수 비법’으로 유명하다. 서울에선 매콤한 주꾸미 철판볶음이 많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대문역 부근 삼오 쭈꾸미(02-362-2120), 마포구 도화동 목포낙지(02-712-1237), 용산구 숙대입구 어부의 딸(02-790-4788), 강남구 논현동사거리 부근 영동주꾸미(02-517-9592), 중구 충무로주꾸미불고기(02-2279-0803), 마포구 용강동 주꾸미집(02-719-8393) 등이 먹을 만하다.
주꾸미는 갯가 사람들이 즐겨 먹던 서민 음식이다. 맛도 좋고 칼로리가 낮으며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불포화지방산과 머리를 좋게 하는 DHA를 함유하고 있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
‘뱃전에 서서 뿌려두었던/빈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알 깔 집으로 유인한//주꾸미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 온다//머리 쪽으로 말아 올린 다리 빨판에/납작한 돌, 조개껍질, 나무말뚝 껍질로/대문 닫아 건 채/물밑 바닥이 뻘이라 아직 대문 못해 건 놈은/올라오다 떨어지기도 하며//뭐야, 또 두 마리!/먼저 든 놈 대문 완벽하여/문이 벽이 되어/겹 대문/겹 죽음일세//뱃전에 서서 빈 소라껍질 매단 줄을 당기면/배가 흔들리고/길에 매달린 세상 집들이 흔들린다’ <함민복의 ‘주꾸미’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