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하, 이맛!]먹통 속 쌀밥 가득, 깨물면 오도독… ‘주꾸미’

입력 | 2010-04-09 03:00:00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주꾸미들이다./소라껍질에 끈 달아 제 놈 잡으려고/바다 밑에 놓아두면 자기들/알 낳으면서 살라고 그런 줄 알고/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어부가 껍질을 들어올려도 도망치지 않는다./파도가 말했다./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런 족속들 있다./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 빈다.’

<한승원의 ‘주꾸미’에서>

주꾸미의 고향은 소라껍질이다. 그곳에서 알을 깨고 나왔다. 주꾸미는 늘 소라껍질을 그리워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곳에 가고 싶다.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가 셔터를 내린다. 힘들 때도 그 속에 들어가 운기조식한다. 알을 낳을 때 그곳에 들어가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소라껍질은 주꾸미가 태어난 자궁인 것이다.

사람 귀는 소라껍질, 늘 바다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귀는 결코 파도소리를 들으러 가지 않는다. 평생 단 한 번 바다에 가지 않고도 귀는 멀쩡하다. 온몸으로 ‘사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둥 속에 들어가 ‘복 달라고 비는’ 인간이야말로 미련 곰탱이 바보천치다.

봄 주꾸미(도다리), 가을 낙지 문어(광어 전어)다. 주꾸미 낙지 문어는 팔이 모두 8개 있는 문어 문중의 삼형제다.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는 팔이 10개인 꼴뚜기 문중이다. 강원도는 오징어, 경상도에선 문어, 충남 서해안에선 주꾸미, 호남 서남해안에선 낙지를 즐긴다. 문어 문중에선 주꾸미(20cm)가 가장 작다. 문어(3m)가 팔척장신이고 낙지(70cm)가 그 다음이다. 주꾸미는 머리(몸통)와 발이 딱 붙은 ‘숏다리’에 이름마저 쭈글쭈글하다.

주꾸미는 맛있다. 누가 뭐래도 꽃피는 3, 4월엔 으뜸이다. 이때쯤이면 주꾸미가 한창 알을 깔 때다. 먹통에 쌀밥(밥알)이 터질 듯 가득하다. 한입 깨물면 오도독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진다. 탱탱 불어터진 목련꽃봉오리가 투두둑 터지는 듯하다. 고두밥을 씹는 듯도 하고, 김이 펄펄 나는 고슬고슬한 무쇠솥 밥을 먹는 것도 같다. 숭늉처럼 구수하다. 오도독 씹힐 땐 미더덕처럼 향긋 알싸하다. 밥알은 주꾸미의 알이다.

소라껍질에 들어가 몸을 푸는 주꾸미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암놈이다. 그렇다면 암놈만 잡힌다는 얘기인가? 쌀알이 없는 수컷들은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까? 천만의 말씀. 사실 자루 모양의 그물로 잡는 주꾸미가 소라껍질 방식보다 그 양이 훨씬 많다. 그물로 잡으면 암수는 물론이고 크든 작든 모조리 산 채로 끌려나오게 돼 있다. 소라껍질 방식은 주꾸미 크기가 일정하고, 암컷이 주로 잡힌다는 장점이 있다.

주꾸미는 회로 먹고, 무쳐먹고, 데쳐먹고, 삶아먹고, 볶아먹고, 구워먹는다. 삼겹살과 섞어 구워먹는 주삼불고기까지 있다. 그만큼 요리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회나 샤부샤부가 으뜸이다. 살짝 데쳐 회로 먹을 땐 먹통의 검은 먹물에 찍어 먹는다. 먹물에 라면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사람도 있다.

샤부샤부는 육수가 맛을 좌우한다. 재래식 된장과 청양고추 미더덕 등을 넣어 삶으면 주꾸미된장 샤부샤부가 된다.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져 황홀하다. 국물이 시원하다. 고소한 먹물과 함께 먹는 쌀알은 더 맛있다. 타우린이 풍부해 원기회복에 으뜸이다.

주꾸미는 살짝 데쳐야 한다. 오래 삶으면 딱딱해지고 맛이 사라진다. 몸통이 붉은색으로 변할 때가 불을 끌 시점이다. 주삼(주꾸미+삼겹살)볶음 땐 삼겹살을 먼저 익힌 뒤, 주꾸미를 살짝 데쳐야 궁합이 맞는다. 볶음이 매울 땐 카레에다 찍어 먹으면 덜하다.

주꾸미 철판볶음은 주꾸미에 야채 쑥갓 시금치 들깨를 섞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쳐서 살짝 볶아야 한다. 주꾸미 영양돌솥밥도 있다. 굴 전복 밤 대추 등을 넣어 밥을 하고, 나중에 주꾸미를 넣어 살짝 데친다. 그 다음 달래장으로 비벼 먹으면 바로 주꾸미 달래장 비빔밥이다. 양념을 적게 해야 주꾸미의 본래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꾸미 명인도 있다. 충남 서천군 마량포 동백정 앞 서산회관(041-951-7677)의 김정임 씨가 바로 그 주인공. 40년 경력의 김 씨는 ‘그만의 된장육수 비법’으로 유명하다. 서울에선 매콤한 주꾸미 철판볶음이 많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대문역 부근 삼오 쭈꾸미(02-362-2120), 마포구 도화동 목포낙지(02-712-1237), 용산구 숙대입구 어부의 딸(02-790-4788), 강남구 논현동사거리 부근 영동주꾸미(02-517-9592), 중구 충무로주꾸미불고기(02-2279-0803), 마포구 용강동 주꾸미집(02-719-8393) 등이 먹을 만하다.

주꾸미는 갯가 사람들이 즐겨 먹던 서민 음식이다. 맛도 좋고 칼로리가 낮으며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불포화지방산과 머리를 좋게 하는 DHA를 함유하고 있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

주꾸미 머리는 사실 몸통이다. 그 안에 위 간 아가미 생식기 등 모든 기관이 들어 있다. 8개의 ‘숏다리’는 팔이다. 팔(다리)은 졸깃졸깃 오동통 씹는 맛이 그만이다. 흡인력이 엄청난 빨판이 붙어 있다. 그 빨판으로 2007년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꽉 껴안고 올라왔다. 바다 밑에 수천 점의 고려청자 보물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려줬다. 이쯤 되면 웬만한 시시껄렁한 사람보다 훨씬 낫다.

‘뱃전에 서서 뿌려두었던/빈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알 깔 집으로 유인한//주꾸미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 온다//머리 쪽으로 말아 올린 다리 빨판에/납작한 돌, 조개껍질, 나무말뚝 껍질로/대문 닫아 건 채/물밑 바닥이 뻘이라 아직 대문 못해 건 놈은/올라오다 떨어지기도 하며//뭐야, 또 두 마리!/먼저 든 놈 대문 완벽하여/문이 벽이 되어/겹 대문/겹 죽음일세//뱃전에 서서 빈 소라껍질 매단 줄을 당기면/배가 흔들리고/길에 매달린 세상 집들이 흔들린다’ <함민복의 ‘주꾸미’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