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뒤웅박과 같겠는가? 어찌 매달려 있어 먹지 못하겠는가?
吾豈∼와 焉能∼은 모두 반어법의 표현이다. 匏瓜는 별자리라는 설도 있지만 뒤의 어구로 보아 뒤웅박 설이 옳다. 뒤웅박이 매달린 채로 있다는 표현은 ‘주역’의 井卦(정괘)에서 ‘우물이 깨끗한데도 먹어주지 않는다’고 한 것이나 鼎卦(정괘)에서 ‘꿩의 맛있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함을 비유한다. 그래서 匏繫(포계)라고 하면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하고, 匏繫之歎(포계지탄)이라 하면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말이 된다.
군자의 出處進退(출처진퇴)에는 經法(경법)과 權道(권도)가 있다. 공자는 이전에 “직접 그 몸에 不善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군자가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經法을 밝힌 것이다. 공자가 필힐의 부름에 가려고 했던 것은 천하에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니, 큰 權道를 따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필힐이 끝내 변화될 인물이 아니고 옳은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결국 가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權道를 실행한다면서 不善을 저지르는 자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오만이요 기만이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권도를 운위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