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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리포트]플랜트업계 1위 삼성엔지니어링은 지금…

입력 | 2010-04-10 03:00:00

“전 직원을 글로벌 전문가로”… 365일 인재교육 중
교육비 규모 애플 - GE와 맞먹어
신입사원 두달간 해외 현장 실습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25%씩 성장한 회사가 있다. 중소기업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유 현금이 1조2000억 원을 넘는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던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매출액이 4조 원을 돌파했다. 2012년 매출 목표는 10조 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2005년부터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국내 플랜트업계 1위 삼성엔지니어링의 간략한 경영지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1970년 설립된 코리아엔지니어링을 모태로 한다. 삼성그룹은 국내 최초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인 코리아엔지니어링을 1978년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엔지니어링업계 최초로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나름의 실적이 있었지만 삼성 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0년대 초까지 적자가 거듭되면서 삼성중공업, 삼성테크윈과 함께 삼성의 ‘못난이 삼형제’라는 놀림도 받았다고 한다. 반전이 시작된 것은 2003년, 기폭제는 중동시장 공략이었다. 이전까지 동남아시아 시장의 플랜트 건설에 주력하던 데서 벗어나 중동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한 것. 때마침 중동 국가들이 단순 원유 수출에서 석유화학 플랜트를 기반으로 하는 독자적인 중공업 국가로의 도약에 시동을 걸면서 삼성엔지니어링의 ‘대박 수주’ 행진이 이어졌다.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 APPC사(社)의 석유화학 플랜트,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 카얀사의 아민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 마덴사의 암모니아 프로젝트 등을 수주하며 ‘오일 머니’를 본격적으로 빨아들였다. 지난해에는 알제리 국영석유회사인 소나트랙이 발주한 26억 달러(약 3조 원)짜리 정유플랜트와 아랍에미리트 국영회사인 애드녹 계열 타크리어사가 발주한 27억 달러짜리 정유플랜트 계약 등 3조 원대 규모의 플랜트 공사를 두 건이나 수주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수주액은 10조 원이 넘는다.

중동 시장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을 필두로 한 국내 플랜트업계의 약진은 ‘2차 중동 붐’이라는 말까지 낳았다. 1970년대 1차 중동 붐이 일 때는 한국의 기능인력이 선진국의 플랜트업체에 고용돼 달러를 벌었지만 이제는 한국 업체가 외국 기능인을 고용하고, 직접 설계 건설하는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도약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삼성엔지니어링은 “‘글로벌 통합 리더 양성’을 모토로 인재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플랜트사업은 발주처의 돈을 받아 공장을 설계하고 기자재를 구해 설비를 직접 건설한다. 공장, 매장, 상품이 없는 사업으로, 고가의 장비보다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 기술인력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플랜트업체가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역량 있는 인재 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의 인재 관리는 남다른 측면이 있다. 2007∼2009년 삼성엔지니어링이 쓴 교육비 규모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애플과 맞먹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원 4700여 명 중 박사급 인력이 57명, 기술사는 200명, 외국인도 865명에 이른다.

■ 삼성엔지니어링은 지금… 문제 생기면 즉시 ‘스페셜리스트 세미나’ 가동

특히 신입사원은 2개월간의 해외 현장실습을 비롯해 6개월간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은 ‘조기 전력화’를 모토로 철저하게 현장 중심으로 짜여 있다. 2008년 입사한 화공사업그룹 최경환 씨(29)는 기억에 남는 교육으로 실습과 병행했던 ‘프로젝트 시뮬레이션’을 꼽았다. 서로 다른 부서에 배치된 동기 40명가량이 조를 이뤄 한 달 동안 서류상으로 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2∼3년 걸리는 플랜트 프로젝트를 30여 일 동안 과정을 밟아가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보고서를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만들고 인사팀에 제출해야 한다.

최 씨는 “프로젝트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공정이 어떤 순서로 흐르고 각 부서가 어떤 식으로 서로 협조하는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포절팀 안명의 씨(26·여)는 입사 첫해에 태국 라용 공단의 가스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실습한 것이 지금 팀에서 입찰과 견적 관련 업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구매한 자재들이 현장으로 배송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나 사무실에서는 얻기 어려운 자재 관련 정보들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신입사원 과정이 끝나도 전문 직무교육을 계속 받는다. 국내외 MBA나 장·단기 해외 연수 등의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서 간에 서로 원활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도록 독려하는 회사 정책과 분위기다.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평소 “자발적 학습문화를 체질화해서 구성원 모두가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만 엔지니어링 비즈니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플랜트 사업은 발주처와 현장별로 각종 돌발 상황과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핵심 지식은 대부분 ‘고참 경력자의 경험 자산’이다. 프로젝트를 3, 4건 정도 경험한 경력 10년차 이상이 돼야 비로소 책임을 지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종도 많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 같은 지식을 체계화해 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인 74개의 온라인 강좌를 자체 개발했지만, 아무래도 얼굴을 맞대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교육 방법은 없다고 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 같은 비정형(非定型) 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각 개인이나 단위 조직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필요한 점을 공부하도록 하는 ‘자율적 역량 개발 시스템(SELF DP)’을 운영하고 있다. 입사 4년차인 토목팀 김종홍 대리는 “팀에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문제가 있으면 회사 안에서 전문가를 찾아 ‘스페셜리스트 세미나’를 연다”며 “다른 부서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이 참석할 수 있고 협력업체 직원까지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프로젝트를 마치면 잘한 부분과 잘못한 부분에 대해 발표회를 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삼성엔지니어링에 처음 들어와 부서 간 벽이 낮고, 선후배 간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격의 없는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에 놀란다고 한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건설업이 아닙니다, 지식집약산업입니다” ▼


“저희 건설업 아닙니다. 지식집약산업 하고 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 홍보팀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래도 일반인에게 낯선 업종이다 보니 ‘엔지니어링업=일반건설업’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몇 년 전까지 기업설명회(IR)에서 두 업종의 차이점을 도표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엔지니어링은 인재와 기술력이 중요한 지식집약형 산업으로, 고도의 사업관리 능력이 필요해 신생 업체의 진입이 쉽지 않다. 반면 건설업은 시공능력이 중요한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자재 장비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강조된다. 또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는 일반건설업과 달리 엔지니어링업에서는 설계 구매 공사를 턴키방식으로 일괄 발주하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삼성엔지니어링은 ‘대형 제조업과 특징이 비슷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과 달리 뜻밖의 면모가 많다는 게 회사 측의 주장이다. 우선 시설투자액이 대단히 적다. 올해의 경우 매출 계획은 5조 원이지만 자본투자와 시설투자를 합한 투자 총액은 2550억 원으로 0.05% 수준에 불과하다.

회사 인력의 87%가 엔지니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본사에 있는 인력은 적고 대부분이 공사현장 근무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4700여 명의 직원 중 4000명 가까이가 서울 강남구 인근에서 일하고 있다. 다만 직원이 2005년 1700여 명에서 5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면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본사 사옥의 공간이 모자라 대치동 글라스타워, 삼성동 라이언타워, 도곡동 군인공제회관 등에서 분산 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 박찬구 홍보IR팀 차장은 “엔지니어링 회사 직원이라면 주로 현장에서 공사감독 등을 할 거라고 여기는 분이 많은데 큰 오해”라며 “본사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이공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우리 회사의 인기가 한층 더 높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임원을 제외하고 직원 평균연봉도 지난해 기준 7550만 원 수준이어서 삼성의 비금융 계열사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