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방/김미월 지음/272쪽·1만1000원·민음사
‘잠만 자는 방’ 혹은 ‘잠만 자실 분’. 대학가 하숙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이다. 하숙방은 식사와 경우에 따라서는 빨래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 방은 말 그대로 일체의 기타 서비스가 없다는 뜻이다. 그 대신 방 값이 일반 하숙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갓 제대한 휴학생 오영대가 발견한 것도 이 전단이다. 착하기는 한없이 착하고 순해 빠지기론 비교할 데가 없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의 꿈도 목표도 없는 어수룩한 청년.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아, 예”라고 시작하는 순박한 인간. 그는 인생 최초로 독립선언을 하며 이 방을 선택한다. 다리를 쭉 뻗고 자기도 힘들 만큼 좁은 방 안에서 그는 이전에 살던 누군가가 남기고 간 노트를 발견한다. 대학 진학 때문에 바닷가 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역시 하숙방과 자취방을 전전해야 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다.
사춘기와 함께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웬걸, 20대의 방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때때로 조악하고 치기 어리지만 그래서 더 꿈 많고 괴롭고 설레는 시절. 빈곤하고 비루한 청춘의 땀 냄새가 흠씬하다. ‘서울 동굴 가이드’를 펴냈던 김미월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