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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정희]대형마트, 몸 불리기보다 상생을

입력 | 2010-04-10 03:00:00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아서 상생에 대한 목마름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상생은 요즘 같은 불경기와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중소 제조업과 중소 유통업체의 어려운 환경, 일자리 확대라는 국가적 과제 앞에서 더욱 절실해 보인다. 그동안은 결의대회나 기업과 정부정책 홍보용으로 실질적이지 않은 전시 효과만을 노린 상생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중에 모 백화점이 무명 디자이너 10명을 뽑아 매장을 내주고 인테리어 지원도 하겠다는 소식은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높은 판매수수료와 유명 브랜드 위주이며 콧대 높다고 비판받던 백화점의 신선한 상생 움직임으로 기대하게 한다.

유통시장이 1996년 개방된 이후 국내 유통시장은 대형마트와 같은 신업태 등장과 해외 글로벌 유통업체의 진입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유통업체의 대형화 추세와 함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국내 유통시장은 업태 내, 그리고 업태 간 경쟁 증대로 쇼핑환경이 개선되는 등 소비자 편익이 증대되고 생산성 향상, 혁신형 신업태 등장에 따라 유통산업이 발전하는 긍정적인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 시장의 양극화와 업체, 업태 간 갈등 발생을 야기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는다. 특히 대형화된 기업형 유통업체는 유통경로상의 힘을 바탕으로 제조업체 또는 중소유통업체와의 갈등을 야기했다. 대기업슈퍼마켓(SSM)으로 촉발된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유통업체 간의 갈등은 채널 간의 영역 중복으로 인한 수평적 갈등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사업 규모가 커지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짐에 따라 납품업체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통시장 개방 이전에 소매유통시장에서는 시장 주도권을 아무래도 파워브랜드를 가진 제조업체가 행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의 규모가 커지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서의 거래교섭 주도권을 대형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형국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우월적 힘은 입점한 중소 제조업체 또는 납품업체와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입점 또는 납품하여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려는 중소 제조업체는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대형 유통업체의 부당한 요구가 있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서면실태조사(2009년)에서 부당반품, 경품제공·저가납품 강요와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경험했다는 응답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앞으로 유통시장은 더욱 경쟁체제로 발전할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 간에도 경쟁은 심화되고 업태 간에도 경쟁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현재의 성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과당경쟁에 휩쓸리고 거래 파트너를 쥐어짜며 새로운 시도를 외면하는 자세로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얻을 수 없다. 시장에서 거래 파트너의 존경을 받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며 경쟁업체와 차별적인 서비스 및 경영방식으로 무장해야만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에 있게 된다.

상생은 실질적으로 이루질 수 없으며 대기업의 양보를 강요하는 일방적 퍼주기식이라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20여 년의 장기 불경기를 경험한 일본 유통기업은 유통시장의 침체가 그동안 몸집 불리기에 치중하고 벤처정신과 사회성으로 대표되는 상인정신이 부족했던 데서 야기됐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을 국내 대형 유통업체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