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르는 바닷물에 섬 버리고 도시로… 행복도 희망도 버렸다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 위협을 받고 있는 방글라데시 쿠툽디아 섬의 코미라소라 어촌 마을. 살던 마을이 바닷물에 잠기는 바람에 주민들이 해변에 움막을 지어 모여 살고 있다. 바닷물에 90도로 깎여 나간 지형과 반쯤 무너진 집들이 가까운 미래에 물에 잠길 마을의 앞날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지난달 26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외곽 라이에르 바자르 지역의 한 빈민촌을 찾았다. 시내를 흐르는 부리강가 강 강둑을 따라 나무와 양철판으로 지은 판잣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곳곳에는 지저분한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벌거벗은 아이들은 맨발로 그 위를 뛰어다녔다. 알리 무사인 씨(50) 가족은 5년 전 볼라 섬이 물에 잠겨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기후변화 난민(Climate refugee)’ 중 하나다. 메그나 강 하류 벵골 만에 위치한 볼라 섬은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고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유량이 늘어나면서 섬의 절반이 물에 잠겼다.
벵골만 연안 쿠툽디아 섬
해수면 상승에 면적 85% 줄어
집잃은 이들 도시빈민 전락
사람 못사는 저주의 땅으로
하시나 총리 “기후의 테러”
○ 벵골 만에 잠기는 쿠툽디아 섬
다카 인구의 35%가 살고 있는 빈민가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이 도시에선 지금도 하루 2000명꼴로 인구가 늘어난다. 현재 다카의 인구는 1400만 명. 수십 년 안에 4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섬 남쪽 끝의 코미라소라 어촌 마을도 200가구 중 30가구만 남았다. 이 마을에 사는 브라조 하리 다스 씨(50)는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래 5km 밖의 저 섬과 이곳은 연결돼 있었어요. 아버지의 집이 건너편에 있었죠. 우리 가족은 그 사이에 살았는데 마을이 모두 물에 잠겨 여기까지 쫓겨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자커 아호메드 씨(60)는 자기 땅을 경작하는 어엿한 농민이었다. 지금은 땅이 바다에 잠기는 바람에 남의 집에 얹혀살며 고깃배를 타는 처지다. 그는 “내가 늙었다고 배 주인들이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 한다. 하루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많다”며 울먹였다.
○ ‘기후의 테러’를 당한 방글라데시
현장에 동행한 현지 환경단체 코스트의 활동가 페르두스 호사인 씨는 “기후변화로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부피가 팽창하고 해수면이 상승했기 때문에 섬이 사라지고 있다”며 “대부분 해안 지역의 상황이 이곳과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뜨거운 벵골 만’ 때문에 방글라데시를 덮치는 사이클론의 횟수가 잦아지고 강도도 세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대기와 해류의 순환 시스템이 달라지고, 몬순(계절풍)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 바람에 방글라데시 동북부는 강수량이 과거보다 40% 줄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반대로 서북부는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가 잦아졌다. 독일 환경단체인 게르만와치는 지난 20년간 기후변화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로 방글라데시를 꼽았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의 변화는 ‘기후의 테러’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방글라데시 환경산림부(MoEF)의 조이널 타룩더 발전 및 행정 담당국장은 “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제방을 쌓고 경작지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이 나라의 국민은 그 누구도 정부가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 기후변화 이후 빈곤층-강력범죄 증가 ▼
바뀐 날씨에 식량난 심화
사회경제시스템 무너뜨려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120km)으로 유명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아름다운 모래사장 뒤편에는 쿠툽디아 섬 출신의 난민 20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쿠툽디아바라가 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10년 전만 해도 자기 땅을 가진 농민이거나 자기 배를 가진 어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쌀 배급을 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하는 빈민이 됐다.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식량난과 빈곤 확대 등 방글라데시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비 내리는 시기가 변하면서 아우스, 아만, 보로 등 각기 다른 벼를 이용한 전통적인 3모작이 어려워졌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방글라데시의 쌀 생산량이 2050년까지 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쌀값은 지난 1년 6개월 사이 50%나 올랐다.
바닷물에 잠긴 논은 하나둘씩 새우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새우 양식은 논농사만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영향으로 농업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농업이 노동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방글라데시의 직업과 식량 안정성이 동시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빈곤이 기후변화 피해를 낳고, 기후변화가 또다시 빈곤을 낳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갈등도 심각하다. 방글라데시가 ‘가난하지만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국가’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있다. 치타공에서 활동하는 난민 구호단체 SBF의 무함마드 알리 식다르 사무국장은 “기후난민이 크게 늘어나면서 폐기물 처리시설 부족으로 2차 오염이 심각하다”며 “이뿐만 아니라 원주민과 난민 사이의 다툼, 강도, 강간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타공에서 만난 환경·난민분야 비정부기구(NGO)인 코스트 트러스트의 레자울 카림 초드허리 사무국장은 “기후변화를 가져온 선진국들이 환경난민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기-건기 달라져 문제 더 심각”
니샤트 세계자연보전연맹 방글라데시 지부 자문역 ▼
지난달 26일 다카 굴샨 지역 사무실에서 만난 아이눈 니샤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방글라데시 지부 수석 자문역(사진)은 “기후변화는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하루빨리 적응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의 진실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방글라데시가 겪고 있는 수많은 변화를 제시했다. 그는 “자연재해가 더욱 잦아지고,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의 시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비가 많이 오지 않는 5월에 비가 쏟아져 쌀 수확을 망칩니다. 매년 비가 내리던 4월 중순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요. 이런 자연현상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심각한 식량 문제를 가져옵니다.”
니샤트 자문역은 “지금은 우리가 먼저 경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 세계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사진=다카·쿠툽디아·치타공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