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종군기자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숨 막히는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주인공 제임스 하사는 사제폭탄을 873개나 해체한 이 분야의 최정예이다. 매번 목숨을 건 작업이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처리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안 죽으면 된다”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허트 로커는 베트남전 때부터 쓰인 군대 속어이다. 허트(hurt)는 고통이나 부상을 의미하고, 로커(locker)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제임스 하사는 이라크 복무를 마치고 미국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바그다드로 복귀한다. 비글로 감독은 이러한 열정을 ‘마약’이라고 영화적으로 표현했다. 부상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임스 하사의 모습에서 UDT 노병 한주호 준위가 떠올랐다.
노근리의 사실과 6·25의 진실
올해는 세계 냉전의 대리전이었던 6·25 60주년을 맞는 해다. 6·25는 영화 소재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전투,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 중공군에 밀려 전우의 시체를 눈 속에 파묻으며 후퇴하던 장진호전투, 북한 공산정권의 압제를 피해 흥남 부두에 몰려든 피란민 10만 명을 남쪽으로 수송하는 철수작전, 평양의 탈환과 후퇴….
이 씨가 8년에 걸쳐 만든 ‘작은 연못’은 영화적 리얼리즘과 재미가 쏠쏠했다. 화면도 아름다웠다. 다만 시사회장을 나오며 그의 열정과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면서도 6·25 60주년에 헌정된 영화가 ‘작은 연못’뿐인 데 대해서는 한쪽이 비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은 연못’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들에는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군이 민간인 500여 명에게 12만 개의 총알을 퍼부었다.’ ‘노근리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양민학살이 무수히 많다.’ 영화 종결부에서 노근리 참극의 현장에 인민군 소년병이 나타나 “미국 놈들은 다 도망갔쇼. 산 사람 없쇼”라고 소리치는 장면도 해방자와 침략자의 개념에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
양민학살은 남쪽 군인과 우익이 저지른 것도 있지만 북한 인민군과 좌익이 자행한 것도 부지기수다. 북쪽에서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한밤중에 끌려 나가 이유도 모르고 죽었다. 인민군대는 미군을 몰아낸 해방자가 아니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승인과 지원을 받아 남쪽으로 쳐내려온 침략자였다. 유엔군의 참전은 김일성의 군대로부터 한국을 구해냈다. 이것이 6·25의 큰 그림이다.
한쪽 허전한 6·25 60주년 영화
‘작은 연못’ 시사회장에는 젊은 관객이 대부분이었다. 6·25는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에 일어났다. 이 씨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6·25의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 영화만 보고 나면 전쟁의 의미와 미군의 역할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리라는 걱정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지나가다가 주민 10명을 만났는데 모두 어린이였다면 “그 마을에 어른이 살지 않는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 같은 오류 말이다.
할리우드는 돈방석에 오른 아바타를 외면하고 흥행에서는 실패한 ‘허트 로커’에 아카데미상을 6개 부문이나 몰아주었다. 상업주의로 찌든 할리우드 영화에도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진하게 묻어난다. 아직도 휴전상태인 6·25 60주년에 천안함 수습은 현재진행형이다. 반미 코드의 ‘작은 연못’을 뛰어넘어 의로운 군인정신을 그린 충무로판 ‘허트 로커’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