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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고’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온난화로 고갈되는 안데스 빙하, 페루

입력 | 2010-04-12 03:00:00

‘생명수’ 빙하 27% 사라져… ‘물려줄 미래’도 녹아내린다




지난달 24일 오전 7시경 페루 안데스산맥 해발 2500m에 위치한 융가이 마을에서 바라본 우아스카란 빙하(해발 6867m). 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빙하는 1977년 이후 해마다 20m씩 산 정상으로 후퇴하고 있다.


1932년에 빙하가 풍부했던 안데스산맥 해발 4825m에 있는 브로기 빙하지대는 2005년부터 눈을 찾아보기 어렵다. 2007년에 찍은 사진에는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고 시커먼 암벽만 모습을 드러내 흉물스럽다. 사진 제공 페루 빙하수자원연구단


《‘남미의 알프스’로 불리는 페루의 우아라스. 안데스산맥 해발 3100m에 자리 잡은 고산도시로 14만7000여 명이 모여 산다. 안데스산맥의 빙하를 구경할 수 있는 최적지인 이곳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약 400km 떨어져 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자동차로 8시간 걸린다. 지난달 22일 기자가 찾은 이곳은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乾期·5∼9월) 때 유일한 수자원인 안데스산맥의 빙하는 우기(雨期·10월∼이듬해 4월)에 몸집을 불린다. 우기 때는 관광객의 발길도 뜸해진다. 하지만 3월 하순 페루의 빙하는 녹고 있었다. 건기 때 빙하 물에 의존하는 페루 주민들에게 젖줄이 끊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구 70%가 사막지대 거주… 빙하가 유일한 수자원인 셈
감소 속도 갈수록 빨라져… 수돗물 없는 해안가 큰타격
이상기후로 병충해도 극성

○ 녹아내리는 페루의 안데스 빙하

23일 오전 해발 5240m에 있는 파스토루리 빙하를 보기 위해 우아라스에서 다시 자동차로 남쪽으로 4시간을 달렸다. 우아스카란국립공원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불과 2001년까지만 해도 스키대회가 열렸던 곳이지만 그동안 워낙 황폐해진 탓이다. 며칠 전부터 주페루 한국대사관(대사 한병길)의 협조를 얻어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험한 산길을 타고 해발 4875m까지 올라가 눈앞에서 살펴본 파스토루리 빙하는 과거의 웅장했던 모습과 달리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곳인 데다 관광객의 잦은 출입으로 빙하는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빙하 근처 조그만 호수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얼음이 꽁꽁 얼었지만 지금은 얼음조각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옆엔 빙하가 녹은 뒤 드러난 시커먼 암벽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동행한 빙하수자원연구단의 오스마르 빌가 고메스 연구원(29)은 “파스토루리 빙하는 두께가 20m에 불과하다”며 “10년쯤 지나면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토루리 빙하는 1980∼1990년 산 정상 쪽으로 127.84m 후퇴했다. 1991년부터 2008년까지 후퇴한 거리는 397.28m에 이른다. 1991년 이후 후퇴 속도가 이전의 2배에 가깝다.

1932년에 빙하가 풍부했던 해발 4825m의 브로기 빙하지대는 2005년부터 눈을 찾아보기 어렵다. 빙하는 사라지고 시커먼 암벽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해발 4890m의 야나마레이 빙하도 마찬가지다. 1982년까지만 해도 빙하가 호수에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1980년대 말부터 호수는 녹고 지금은 바위를 드러냈다.

고산지대 기후는 예측하기 어렵다. 쨍쨍 내리쬐던 햇볕은 한순간에 흔적을 감추고 내려오는 길에는 비와 우박이 떨어졌다.

○ 우아스카란의 녹는 빙하

고산병의 후유증은 지독했다. 밤새 앓다가 23일 오전 6시 몸을 추슬러 다시 우아스카란 빙하로 이동했다. 우아스카란 빙하는 해발 6867m로 안데스산맥에서 가장 높다. 우아라스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달리며 우아스카란 빙하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해발 2500m의 융가이 마을에서 바라본 우아스카란 빙하는 녹는 흔적이 뚜렷했다. 햇빛에 반사된 빙하의 녹는 물은 기후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30여 년 동안 빙하를 연구한 마르코 자파타 씨(62)는 기자와 동행하면서 “페루 빙하는 1948∼1976년 연평균 7∼8m씩 정상으로 후퇴했지만 1977년부터 지금까지 연 20m씩 산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공장 증설과 온실가스 배출의 직접적인 영향을 안데스산맥의 빙하가 받고 있는 것이다.

페루에서 58km 떨어진 융가이 마을은 1970년 5월 31일 지진으로 우아스카란 빙하가 마을을 덮쳐 8000명이 죽은 곳이다. 1962년에도 인근에 빙하가 덮쳐 주민 4000명이 사망했다.

○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리마

안데스산맥에서 녹아내리는 빙하는 페루 수자원과 농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페루 인구 2920만 명(지난해 기준) 가운데 70%는 태평양 연안에 몰려 산다. 1년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지역이어서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린다. 안데스산맥 동쪽 아마존 지역에는 97.7%의 물이 공급되지만 70% 인구가 밀집된 서쪽 해안에서는 1.8%만 공급될 뿐이다. 서쪽 해안지역 수자원은 대부분 안데스산맥의 녹는 빙하에 의존한다. 하지만 페루의 주요 빙하지역인 블랑카 산맥 빙하는 1970년 723.4km²에서 2003년에는 527.6km²로 최근 33년간 27.1%나 줄었다.

리마에 인구가 몰리고 주변의 사막 언덕에 달동네가 생기면서 식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자가 22일 찾은 리마 인근의 한 지역에서는 집 앞에 파란 물통을 놓고 물 배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급수차가 와 물 한 통을 채우는 데 10솔(약 3달러)을 내야 한다.

○ 기후변화가 바꿔놓은 농작물 생태계

안데스의 이상기후는 페루의 농작물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리아하’로 불리는 서리와 우박을 동반한 현상이 산지를 강타하면 기온이 뚝 떨어지며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11월이나 12월에 내리던 서리가 지금은 언제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해발 3500m 앙카시 주 캄라이 치코 마을에서 23년 동안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아 론당 씨(38·여)는 “5∼8월에 냉해로 감자 잎이 까맣게 변해 버린다”며 “올해는 병충해가 많아 하얀 해충이 감자를 마구 갉아 먹어 작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페루적십자사 대표인 노르마 캄보블랑코 데 베가 씨(56)는 “해안가 가난한 지역에서 특히 물 부족이 심하고 이상기후 때문에 농사도 쉽지 않다”며 “지역공동체에 환경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호세 브락 에그 페루 환경부 장관(69)은 “우기에 내리는 물의 70%는 바다로 흘러가는데 이 물을 저장하기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일본 기업과 함께 건기 때 수자원 확보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다음 세대는 안데스 빙하 못볼수도… ‘더러운 개발’ 중단해야 ▼

페루 빙하연구단 포 르토카레로 단장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안데스산맥에선 빙하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페루 농업부 산하 빙하수자원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세사르 포르토카레로 단장(62·사진)은 안데스산맥 빙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지난달 23일 오전 우아라스 연구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빙하가 빨리 녹는 이유는….

“지구온난화 탓이다. 1975, 76년을 기점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빙하 후퇴 속도도 급속히 빨라졌다. 안데스의 주요 빙하지역인 블랑카 빙하에선 1970년대 매년 7m씩 후퇴하던 빙하가 1980년대 20m, 1990년대 24m, 2000년대엔 매년 25m씩 후퇴속도가 빨라졌다. 페루는 세계 온실가스의 0.1%를 배출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안데스산맥에서 빙하가 사라질 우려는….

“우리가 관측하기론 30년 후엔 아주 적은 양의 빙하만 남을 것이다. 일부에선 5년이면 빙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페루에서 빙하의 고갈은 바로 물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큰 고생을 할 것이다.”

―물 부족은 어느 정도인가.

“페루 인구의 70%가 몰려 사는 태평양 해안지역이 문제다. 사막이라 강수량이 전무하다. 모든 물은 산악에서 내려오고 건기(乾期)엔 빙하가 녹은 물에 의존하는데 빙하가 사라지면 곧 수자원이 고갈된다.”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따진다면….

“영국은 19세기에 석탄을 태워 증기차를 가동했다. 석유가 개발되면서 석탄을 대신해 온난화는 가속됐다. 미국이 자동차를 만들어 팔고 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공장을 짓고 있다. 폴란드 등 동유럽도 책임이 작지 않다. ‘더러운 개발(dirty development)’의 결과가 이렇다. 우리는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다. 스스로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은 막강한 권력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열심히 시키고 있을 뿐이다.”

―지구온난화가 너무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우리 눈앞에서 빙하가 녹고 있다. 병충해가 하루가 다르게 기승을 부리고 농사가 잘 안 된다. 실제 상황이다.”

―세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새 세대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글·사진=리마·우아라스·융가이 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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