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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카틴 숲의 비극

입력 | 2010-04-12 03:00:00


1939년 8월 소련과 비밀리에 불가침조약을 맺은 독일은 9월 1일 3000대의 탱크와 150만 군대를 앞세워 폴란드를 침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소련도 동부 폴란드로 쳐들어온다. 당시 폴란드 정부요인과 고위 장교들은 독일군을 피해 동쪽으로 피란을 가다가 소련군에게 포로로 붙잡힌다.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스탈린은 이듬해 3월 폴란드가 독립국으로 일어설 수 없도록 엘리트의 씨를 말리라고 명령했다. 소련이 폴란드 지도층 인사 2만2000여 명을 처형한 ‘카틴 숲의 대학살’은 이렇게 일어났다.

▷오랫동안 소련은 카틴 숲 대학살의 책임을 패망한 나치 독일에 떠넘겼다.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 사건은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코페르니쿠스와 쇼팽을 낳은 문명국 폴란드는 1772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 통치된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나라가 폴란드다. 우수한 문화를 가졌으면서도 약육강식의 국제정세에서 번번이 당하기만 했던 약소국 폴란드의 슬픈 운명은 구한말 국권을 빼앗긴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등 96명을 태운 러시아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가 카틴 숲 대학살 공식행사에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만을 초청하자 희생자 가족과 함께 별도 추모행사를 갖기 위해 가던 길이었다. 추락 장소가 카틴 숲 부근인 스몰렌스크이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정부요인이 함께 몰살해 엘리트들이 집단 처형당한 70년 전의 참상을 떠오르게 한다.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재 속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폴란드 속담이 있다. 어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폴란드인의 근성과 저력을 보여준다. 폴란드는 우리처럼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내분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꿋꿋이 재기했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운동은 공산주의를 무너뜨렸으며 착실한 경제발전으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세계인들이 폴란드 국민에게 깊고 간절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