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뉴욕에 오래 머물다 보면 첫인상과는 다른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뉴욕은 마천루 숲과 함께 과거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요즘 뉴욕에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은 지난해 여름에 개장한 ‘하이라인’ 공원이다. 맨해튼 서쪽 강변 갱스부르가에서 20번가까지 이어지는 이 공원은 지상 9m 높이에 조성됐다. 하이라인은 원래 1930년대에 지어진 고가 철도였다. 맨해튼 시내로 식료품 의류 등 각종 화물을 실어 나르던 철도였으나 트럭 운송이 활발해지면서 1980년 운행이 중단됐다. 이후 하이라인은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흉물이 됐다.
뉴욕 시는 철도를 허물고 현대식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1억50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추억을 간직한 훌륭한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철로도 그대로다. 철로 주변의 풀밭도 살렸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며 맨해튼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중년 연인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가족 단위의 뉴요커와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뉴욕에는 이처럼 옛 이야기를 품은 명소가 즐비하다. 1800년대 섬유공장을 살리면서도 최고의 쇼핑과 갤러리 거리로 재탄생한 소호, 흑인문화의 특색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할렘, 오레오 쿠키를 개발한 나비스코 과자 공장을 개조해 조성한 재래시장 첼시마켓….
얼마 전 뉴욕을 방문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가장 빠른 길은 한국을 이야기가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경기 화성에 있는 융건릉(隆健陵)을 예로 들면서 “정조대왕의 무덤인 건릉과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 주변의 땅을 소유한 토지공사가 이곳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려 한다”며 “예산만 있으면 이 땅을 사서 한국만의 스토리가 있는 ‘효(孝)문화센터’를 짓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뉴욕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대학교인 FIT의 박진배 건축학과 교수는 “과거를 되살리는 미국의 공공개발 방식은 연구할수록 재밌는 과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만의 이야기가 스민 피맛골을 쓸어버리고 고층빌딩을 지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수많은 사람의 추억이 서린 동대문운동장도 허물어 버리다니…”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스토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새롭게 건설하려는 도시개발 방식,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