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마농 레스코’ 막바지 연습 현장
서울시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 2막 연습. 가난이 지긋지긋해 도망친 마농(김은주 씨·오른쪽)을 데 그뤼(최성수 씨)가 찾아가 분노를 폭발시키지만 둘은 이내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을 재확인한다.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오페라단 연습실. 쓰러진 마농 역의 김은주 씨를 테너 최성수 씨가 부둥켜안은 가운데 최 씨의 애절한 노래를 뚫고 장수동 연출의 외침이 이어졌다. “마농! 천천히 눈을 떠. 날 봐! 이제 정신이 든 거야! 두리번거려! 놀란 듯! 애인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 눈시울이 뜨겁지? 그래, 그 표정!”
서울시오페라단(예술감독 박세원)이 22∼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 ‘마농 레스코’ 4막 연습 현장이다. 마농 레스코는 ‘오늘날 세계 오페라 무대의 4분의 1을 점유하는’(모스코 카너·음악학자) 흥행거장 푸치니의 출세작. 피를 토하는 듯한 격정과 몽환적인 관현악, 달콤하기 그지없는 푸치니 특유의 선율미를 자랑하는 걸작이지만 네 막 무대를 복잡하면서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준비해야 하는 등 공연 조건이 까다로워 ‘라보엠’ ‘나비부인’ 등 푸치니의 대표작들만큼 자주 공연되지는 않는다. 서울시오페라단도 이번 공연이 처음이다.
“사랑은 죽지 않아” 그 목소리
22∼25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이날 연습실은 추운 날씨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장수동 연출의 연기 주문은 세세하면서도 집요했다. 급사 역의 엑스트라가 한 박자만 늦게 음료를 날라 와도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연기에 초점을 맞춘 연습이었지만 4막 마농 절명 직전의 2중창에서 두 주역은 목을 아끼지 않고 최고음의 포르티시모로 남김없이 격정을 분출했다.
“싸움, 러브신, 도망, 죽음…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다 갖춘 오페라죠. 장 선생님의 주문도 워낙 꼼꼼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지시는 푸치니가 음악으로 이미 다 내려놓았어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연기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중간 휴식시간에 최성수 씨는 때로 ‘극사실주의적’으로 느껴지는 푸치니의 정밀한 음악을 찬양했다.
이 작품은 ‘토스카’ ‘나비부인’처럼 푸치니의 대표적인 ‘헤로인’ 오페라다. 마농은 어떤 여인일까. 마농 역 김은주 씨는 ‘본능에 충실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했다. “푸치니의 다른 여주인공들은 완전무결한 사랑의 화신이지만 마농은 아니에요.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단순하죠. 그렇지만 결국은 첫사랑으로 돌아가 자기를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마지막 대사도 ‘사랑은 죽지 않아’ 아니에요?”
마농의 오빠 레스코 역을 맡은 바리톤 유승공 씨(건국대 교수)는 “푸치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그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매우 세밀하게 이해했고 이를 남김없이 음악에 녹여 넣은 점”이라고 설명했다. “‘라보엠’의 미미, ‘투란도트’의 타이틀 롤과 시녀 류 등 푸치니가 사랑한 여성들의 원형이 마농에게 집약돼 있어요. 훗날 푸치니 헤로인의 ‘배아’라고나 할까요.”(웃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마농 레스코: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이자 출세작. 1893년 토리노에서 초연. 9년 앞서 초연된 쥘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과 같은 소재다. 수녀원으로 향하던 미모의 여인 마농을 젊은 기사 데 그뤼가 꾀어 파리로 도피행각을 펼치지만 마농은 데 그뤼를 떠나 부호 제론테의 첩이 된다. 마농은 자신을 찾아낸 데 그뤼와 다시 열정을 불태우지만 제론테의 계략에 넘어가 신대륙으로 유배된다. 하지만 그를 다시 따라온 데 그뤼와 함께 황야로 도망치다 기진맥진해 숨진다. 1막 데 그뤼의 아리아 ‘일찍이 본 적 없는 미인’, 2막과 3막 사이의 간주곡, 4막 2중창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나요’, 마농의 아리아 ‘나 홀로, 잊혀지고 버림받아’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