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인호 칼럼]그때 그걸 꼭 알아야 했을까

입력 | 2010-04-15 03:00:00


두 동강 난 초계함 천안함의 선체가 곧 인양될 듯하다.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한 국제 전문가 팀까지 구성되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피해가 더는 확대되지 않는 방향으로 소화할 이성적 능력과 결집력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갖고 있을까. 사건 발생 이후 일부 언론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누리꾼이 드러낸 모습을 보면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살 권리의 침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하다. 우리는 과연 외국 언론인이 지적했듯이 자학하는 근성을 가진 국민인가.

원인 모를 충격으로 군함이 두 동강 나며 해군 104명 중 46명이 실종되는 전대미문의 참사를 당했을 때 사고의 경위를 즉각 파악하고 책임을 규명하라는 국민의 소리가 빗발치고 실종자 가족이 구조작업이 지연되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린 일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국민을 선도할 책임을 지닌 언론, 국회의원의 자세는 피해 당사자나 일반 국민보다는 훨씬 더 냉정해야 한다. 국가 전체의 안위와 이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이 사건을 놓고 이미 일어난 불행이 확대 재생산되는 일을 막기 위해 실종자 가족이나 일반 국민의 충격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안심시키는 방향으로 노력을 했어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 가장 시급한 일이 인명 구조였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군 당국은 원인을 알아냄으로써 그런 사고가 또 발생할 소지를 차단할 책임이 있었다. 누가 무엇이라 해도 이번 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실종자와 생환자 모두를 포함한 해군이다. 해군의 보호를 받는 국민 역시 격타를 당한 셈이다.

국회-언론 ‘천안함’에 냉정했나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는 원인이 뭐든 간에 우선 지원과 동정과 위로를 보내며 일체감을 표명하는 자세가 인간사회의 상식이며 도리다. 사건 발생 직후 침몰 원인으로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던 상황에서도 언론이나 국회가 보인 태도는 어떤 것이었나. 군과 정부의 졸속대응이 사고를 키운 듯한 인상을 자아냄으로써 실종자 가족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위기 상황에서 하나로 뭉치는 대신 책임공방에 휩쓸리게 만들고, 죽음의 장에서 생환하여 이미 심한 심리적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군인들이 죄책감마저 느끼게 만들지 않았는가.

국회의원이 중대사건에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고 수습에 몸이 열이어도 부족했을 국방부 장관을 불러들여 시간과 정력을 분산시킴으로써 입법부가 도움이 된 일은 없었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다급한 상황을 수습하고 난 후로 미루어도 시간이 충분했다. 사실 칠흑 같은 암흑과 악천후 속에서 104명 중 58명이 살아나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고 고 한주호 준위의 정신이 해군에 널리 배어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국민 앞에 관심만 과시하고 실제로는 별 도움도 주지 않거나 아니면 모든 일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고질이 이번 사건 처리에도 분출되지 않았나 싶다.

알 권리를 지나치게 밝힌 나머지 결국 살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 성향은 사실 국민 모두, 특히 언론이 깊이 반성할 대목이다. 초계함은 군함이고, 군사에 관한 정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작은 조각이라도 남에게 이용당할 여지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사기술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정보의 경중을 식별할 능력도 일반인은 갖고 있지 않다. 천안함 침몰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일본, 러시아 또는 중국의 언론이 자국의 군대를 우리처럼 발가벗기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군 당국도 아무리 여론의 압력이 거세도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은 없다고 거부했어야 했고 실종자의 생환 가능 시간을 연장하여 발표한 것 같은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과시보다 국가안위를 먼저

부질없고 천박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 살 권리 또는 사생활 침해를 낳는 사례는 실종자 가족이나 생환자에 대한 예우의 결핍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국민은 죽은 자는 누구나 깊이 애도하고 추모하는 아름다운 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남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변색되어가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오열하는 모습은 지극히 사적이어야 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데 우리나라에서처럼 매체의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어부를 포함하여 실종자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영웅임을 상기시키는 태도가 오열하는 가족의 모습을 비춰주는 일보다 본인이나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실종 영웅들의 명복과 살아 돌아온 영웅들 및 우리 해군 전체의 빠른 치유와 사기 회복을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