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민주화 시위에 나섰던 스물여섯 살의 대학생이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졌다. ‘우파정부의 주구(走狗)’ 경찰이 죄 없는 젊은이를 죽이다니!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격렬한 데모가 이어졌으며 결국 정권이 좌파로 교체됐다. 1967년 6월 2일 옛 서독에서 벌어진 일이다. 반체제 좌익운동인 68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등 당시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68세대는 우리나라의 386세대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 ‘문제의 경찰’ 카를하인츠 쿠라스가 옛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의 스파이였음이 지난해 확인됐다. 알고 보니 동독의 ‘공작’에 놀아난 서독 학생들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셈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슈타지는 9만1015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동독에 17만3081명, 서독에 1553명의 첩자를 두었다고 한다. 이들이 서독 정부와 정보기관까지 침투한 건 물론이다.
▷1974년엔 현직 총리 빌리 브란트의 보좌관 귄터 기욤이 슈타지의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서독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한 동방정책의 기수가 브란트다. 기욤은 성실한 사민당원으로 지내다 총리 측근이 된 뒤 활약을 개시한 ‘잠자는 스파이’였다. 더 큰 충격은 독일 통일 뒤 슈타지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터져 나왔다. 평소 웃고 떠들며 흉허물을 나눴던 친구가, 동료가,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가 바로 밀고자였던 것이다. 영국의 BBC는 인구 6.5명당 1명이 스파이였다고 보도했다.
▷1980년대 말 남한 인사들이 옛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의 주선으로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는 슈타지의 문건이 입수됐다. 이를 발굴한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번트 셰이퍼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남한에서 온 부자(父子)에 대해 ‘남반부에 있는 동지들’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남한에서 암약한 조선노동당원이나 고정간첩일 수 있다”고 밝혔다. 문건 속 인사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여권번호는 지워진 상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모른다. 남북이 통일돼 북한의 비밀문건이 백일하에 공개되는 날, 바로 우리 곁에서 북의 첩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얼굴로 진지전(陣地戰)을 펴고 있었음이 밝혀질지도.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