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함미가 인양됨에 따라 병사들의 시신 수습과 함께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중요한 ‘사건 현장’이 확보된 만큼 지금부터는 침몰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차분하면서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나온 단서로 보면 외부 요인에 따른 사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누구의 소행인지 물증을 찾아내는 것이 조사 작업의 핵심이라고 본다.
부분적으로 공개된 함미의 상태는 처참했다. 연돌(굴뚝)과 하푼미사일 2기, 경어뢰 2발이 장착된 어뢰발사관 1문이 사라졌다. 갑판 아래쪽 바닥이 역(逆) V자 모양으로 솟구쳐 올랐고 절단면은 너덜너덜 찢겨졌다.
원인규명 신뢰 확보해 流言과 선동 잠재워야
그렇더라도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리 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그제 북의 개입이 확실할 경우 “군사적, 비군사적 모든 다양한 계획을 나름대로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모든 대비를 강구하겠다”라고 수정했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정치적 외교적 대응과 결단은 정부에 맡기고, 군은 군사적 대응 준비를 하면 된다.
대응은 물론 단호하고도 강력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대응이든 성공을 거두려면 국민의 신뢰와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다. 조사단에 군 관계자 외에 민간인 전문가와 외국 전문가까지 참여시킨 것은 이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대응 과정에서 북의 예기치 못한 도발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군은 기뢰탐색선 4척과 무인탐사정 1척, 심해잠수사 38명을 투입해 폭발지점 반경 500m의 해저(海底)를 중심으로 파편 부유물 잔해물을 찾기 위한 정밀 탐색 작업에 착수했다. 함미 선체 내부 조사도 진행 중이다. 폭발물의 정체를 밝혀줄 파편을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바다 밑을 샅샅이 훑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원인 규명을 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과정이 투명해야 조사 결과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만 가해자에 대한 대응도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건인 만큼 군이 모든 조사 과정이나 증거물을 100%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밀주의에 매몰돼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 공개가 어려운 것은 양해를 구하되, 공개해야 할 것은 과감히 공개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근거 없는 유언(流言)이나 선동을 잠재울 수 있다. 정치권은 불필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정쟁(政爭)을 조장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군이 사건 발생 초기에 보였던 대응 방식이나 위기 대처능력, 보고 체계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해군 시스템 전체가 우왕좌왕하면서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책임 추궁과 시스템 보완은 원인이 완전히 규명된 이후에 할 일이다. 지금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일단 정부와 군에 책임을 맡겨 힘을 실어주는 게 옳은 방향이다. 정치권은 미심쩍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나중에 나서도 늦지 않다. 우리 내부의 분열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스스로 약점을 노출시켜 적(敵)을 이롭게 할 뿐이다.
세계는 지금 우리가 천안함 침몰 같은 국가적 위기를 맞아 어떻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성적 합리적인 자세로 대처해야만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천안함은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역량을 묻고 있다. 우리는 천안함 사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다는 결의를 굳게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