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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미국의 원정출산 막기 개헌론

입력 | 2010-04-16 20:00:00


미국에서 원정출산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미 보건통계센터(NCHS)의 조사결과 2000∼2006년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 여성들이 미국에서 출산한 신생아 수가 53% 증가했다고 미국 ABC방송이 보도했다. 2006년에 태어난 신생아 427만3225명 가운데 7670명이 미국에 살지 않는 외국 여성의 아이였다. 이 중에는 유학 또는 미국 출장 중에 아이를 낳은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 자녀의 시민권 획득을 위해 미국에 찾아가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은 22세 이전에 선택하는 국적에 따라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 주립대학에 진학할 경우 외국인 유학생에 비해 학비를 절반만 내는 혜택도 누린다.

▷원정출산을 미국에선 출산관광이라고 한다. 출산관광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한국 중국 대만 멕시코 국민이다. 최근에는 터키와 동유럽권이 합류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비자면제 조치로 한국인의 원정출산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극성스러운 한국의 어머니들이 다른 나라 산모들에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훗날 가족이 이민 올 때 닻을 제공하는 ‘앵커 베이비(anchor baby)’ 노릇도 한다.

▷미국은 프랑스 캐나다와 함께 국적 속지주의(屬地主義)를 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시민권도 영주권도 없는 불법 체류자나 여행객의 자녀에게까지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조항은 1868년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수정헌법 14조에 따른 것이다. 원래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노예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엉뚱하게 원정출산을 불러들이는 제도가 됐다.

▷미국 언론과 공화당을 중심으로 “원정출산은 수정헌법 14조의 의미를 더럽힌다”는 비판이 나온다. 속지주의를 폐지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연방 하원에 계류돼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만큼 헌법 개정이 까다롭지 않다. 원정출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더 높아지면 언젠가 속지주의 조항이 헌법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때가 돼서야 한국 엄마들의 원정출산 행렬이 멈출지 모르겠다. 시민으로서 의무는 다하지 않고 혜택만 보려는 원정출산을 배척하는 미국 내 분위기는 처지를 바꿔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