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그런거 野]불멸의 기록=선수 역량+시대+α

입력 | 2010-04-20 03:00:00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박철순(OB)의 22연승과 백인천(MBC)의 4할 타율(0.412), 1983년 장명부(삼미)의 30승(6세이브 16패) 및 427과 3분의 1이닝 투구 등이 그렇다.

이런 기록은 선수도 뛰어났지만 때를 잘 만나 가능했다. 일본 정상급 타자였던 백인천에겐 걸음마를 시작한 고국의 마운드는 너무 낮았다. 감독까지 겸임했기에 무리하게 출장하지 않은 것도 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천하의 장명부라도 마운드 분업이 정착한 요즘이라면 30승은 언감생심이다. 지난 시즌 최다 이닝 투구가 아퀼리노 로페즈(KIA)의 190과 3분의 1이닝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427과 3분의 1이닝은 한 팀의 원투펀치도 합작할 수 없는 수치다.

2003년 이승엽이 삼성 유니폼을 입고 세웠던 한 시즌 56홈런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전성기이기도 했거니와 심정수(현대·53개)와의 치열한 경쟁도 홈런 개수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괜찮은 왼손 투수가 많지 않았다. 그해 다승 10걸에 포함된 왼손 투수는 11승을 거둔 이승호(LG·현 SK)뿐이다. 이승엽의 전성기가 요즘이었다면 56홈런이 가능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즌 초반이지만 2010년 다승 10걸에는 류현진(한화), 김광현(SK), 양현종(KIA) 등 국제무대에서도 통하는 쟁쟁한 왼손 투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승엽의 팬클럽 회원들이 19일 한 스포츠지에 그의 선전을 기원하는 광고를 냈다. 그러고 보니 왼손 투수에게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승엽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요미우리 이적 첫해인 2006년 타율 0.323, 41홈런으로 부동의 4번 타자 자리를 지킬 때 이승엽은 왼손 오른손 투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2-2로 맞선 8회 역전 결승 홈런을 뽑아낸 상대는 일본 최고의 왼손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였다. 불멸의 기록과 함께 불멸의 타자로 남을 이승엽이 하루속히 부활하길 바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