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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소통] 세대를 아우르고 장르를 비벼내다

입력 | 2010-04-20 03:00:00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인 등용문 ‘젊은 모색’ 30돌 기획전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사진가 구본창 씨의 ‘태초에 6’. 화가 오원배 씨의 ‘무제’. 제2회 ‘젊은 모색’전에 참여한 고영훈 씨의 ‘이것은 돌입니다 7411’. 

보수적 권위의 성채처럼 여겨진 국립미술관에 새 숨결을 불어넣은 전시이자 최장기 기획전이다. 당대의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 작가의 작품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지금 한국 현대미술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은 작가 327명이 이 전시를 거쳐 나왔다.

이는 바로 ‘젊은 모색’전이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시절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해 1990년 이름을 바꾸었고 격년제로 15회가 열렸다. 요즘처럼 신진 작가 공모가 흔치 않았던 시절, 파격적이고 도발적 열정으로 충만했던 젊은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해 온 ‘젊은 모색’전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역대 전시의 참여 작가 중 고영훈 구본창 문범 육근병 이기봉 씨 등은 회화 사진 설치 등 분야에서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호석 노상균 이영배 정현 서용선 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서도호 이불 최정화 이형구 씨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작품을 선보였다. ‘젊은 모색’의 눈이 그만큼 엄정했음을 알 수 있다.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6월 6일까지 1, 7전시실에서 그 성과와 의미를 반추하는 대형 기획전 ‘젊은 모색 三十’전을 마련했다. 제1회에 참여한 예순셋 김용익 씨부터 스물아홉 진기종 씨까지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며 43명의 200여 점을 만나는 전시다. 3500∼5000원. 02-2188-6000.

○ 젊었던 그들

청년작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적극 수용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이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마련한 ‘젊은 모색 三十’전에서는 서도호 씨의 ‘Some/One’(사진)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三十’전은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흐름을 정리하고 한눈에 돌아보는 기회다. 전시의 얼개는 극사실주의, 민중미술, 모노크롬으로 나뉜다. 단색조 회화가 주도해온 미술계에 극사실주의가 고개를 내밀고, 권위적 통치로 숨 막혔던 현실에 저항한 작업과 소그룹 활동과 연계된 실험적 설치작업, 1990년대 이후 사진과 미디어 영상작품은 미술을 넘어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이 전시는 화가 고영훈 씨의 ‘이것은 돌입니다’에서 시작된다. 그가 내놓은 세 작품을 통해 거대한 돌덩이가 작은 돌로 압축되는 작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어 소파의 부분 이미지를 확대 표현한 지석철 씨의 그림과 김창영 김강용 씨의 극사실적 이미지가 이어진다.

1989년 전시에 참여한 오상길 씨는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민중미술과 미니멀리즘이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내 작업은 이쪽인가, 저쪽인가 줄을 서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설치작품으로는 ‘십이지신상’을 소재로 한 육근병 씨의 신작, 8개의 관을 배열한 윤영석 씨의 ‘유토피아의 관’이 눈길을 끈다.

김용익 씨는 평생 엇비슷한 작품을 발표하는 화단의 브랜드화 현상에 대한 거부감을 담은 소포와 천 설치작품을 다시 보여준다. 노상균 씨의 나무둥치 그림에선 시퀀을 집적한 요즘 작업의 씨앗이 엿보인다. 이기봉 씨는 천장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는 책과 책상을 설치작품으로 선보였다. 한국화의 도전과 실험도 주목된다. 아파트 등 변화하는 주변 현실을 한국화에 담아낸 김호석 씨, 한국화의 정신적 기운을 아크릴로 표현한 강경구 씨의 작품 등이 나왔다.

○ 젊은 그들


포스트모더니즘 등 한국 현대미술의 내용이 다원화되고 덩치가 커진 1990년대 이후 작품은 미술애호가의 눈에 익은 것들이 많다. 인체 이미지를 이어붙인 구본창 씨의 사진, 군번으로 완성한 갑옷으로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탐색한 서도호 씨의 ‘Some/One’, 돌아앉은 불상을 만든 이수경 씨의 ‘이동식 사원’ 등. 이와 함께 최정화 씨의 대형 꽃, 고낙범 씨의 대형 컬러 인물초상화, 공성훈 씨의 슬라이드로 만든 동영상 같은 중견의 작품과 가상 뉴스를 소재로 한 진기종 씨, 버터로 해골을 만든 이완 씨 등 신진 작가의 작업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30년의 시공간을 차지게 비벼낸 ‘젊은 모색 三十’전. 어제의 회고가 아니라 내일을 향해 열린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추영 학예연구사는 “젊은 모색의 역사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겹친다”며 “당시 출품작을 비롯해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을 선보인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과거의 기억이자 현재 모습의 반영이며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고 말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