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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차령산맥을 따라서오대산

입력 | 2010-04-22 03:00:00

전나무 흙길 느릿느릿 걸으며 삶 돌아보고…
약수로 목 축이며 기운 차리고…
산동네 막걸리 한사발에 시름 잊고…
산채 한입에 고향생각 떠올라

굽이굽이 ‘自然스런 느림’이 넘친다




오대산은 백두대간의 중심이자 차령산맥의 출발점이다. 해발 1500m를 넘는 봉우리가 5개라서 오대산(五臺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주봉인 비로봉은 1563m. 15일 찾은 비로봉 두로봉 상왕봉 노인봉 등엔 아직도 잔설이 많았다. 국립공원 입구 전나무길 옆 밭에선 아낙네 20여 명이 땀을 흘리며 대파를 심고 있었다.

오대산은 무슨 유전자를 지녔기에 여기로부터 중부권 서남쪽으로 뻗어가는 산들의 자태가 그리도 온유하고 넉넉한 것일까. 오대산은 전형적인 토산(土山)으로 발에 느껴지는 감촉부터 부드럽기 짝이 없다.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 등 유서 깊은 사찰과 오대산사고지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월정사 일주문을 나서면 바로 펼쳐지는 전나무 흙길은 예부터 명상의 길이었다. 느림이 주는 삶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소중함을 맘껏 느낄 수 있다.

오대산 입구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진고개를 넘은 뒤 톡 쏘는 송천약수로 목을 축였다. 다시 좌측 59번 지방도를 따라 굽이굽이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서자 부연마을이 나온다. 부연은 마을에 솥뚜껑을 엎어놓은 듯한 연못(釜淵)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입구에 ‘자연과의 동화 부연마을’이라는 나무간판이 서 있다. 골짜기지만 산천어가 올라올 만큼 땅이 펑퍼짐하고 완만하다. 산림청이 산촌체험마을로 정해 무척 정성을 들이고 있단다. 2006년부터 동부지방산림청은 이 마을과 일촌(一村)을 맺었다.

서울 직장생활을 접고 1991년 이곳에 들어온 최왕수 씨(50). 산사람이 다 된 그에게 마을 앞 해발 1000m의 철갑령은 ‘놀이터’나 다름없다. 매일 산에 올라 누룩취(일명 누루대) 곰취 두릅과 산마늘 엄나무 표고버섯 장뇌삼을 심고 가꾼다. 동부지방산림청 평창국유림관리소 이준표 씨(44)는 그를 “국유림을 가꾸며 복합경영하는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최 씨는 산림청에서 지은 통나무집도 위탁 운영한다.(033-661-5962)

“올챙이가 알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모습 좀 봐요.”

최 씨가 초봄부터 논에 물을 가득 채운 것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을 전체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였다. 곰취를 심은 뒤쪽에 퇴비를 쌓아놓은 것도 장수풍뎅이가 번식하길 바라기 때문.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이날 산림청 직원과 마을 사람들은 밭에 엄나무를 심었다. 새참은 두부 동태국과 흰떡. 막걸리 안주는 토종꿀이었다. 도시에서는 맛보지 못한 또 다른 풍요가 느껴진다.

오대산 주변엔 황태구이, 오삼불고기(오징어와 삼겹살)를 파는 집이 많다. 그러나 이곳에선 아무래도 산채(山菜)가 제격이다. 주변에 30여 개의 산채식당이 있다. 월정사 입구 오대산식당(033-332-6888) 주인인 이문화(76) 김남하 씨(77·여) 부부는 31년째 한자리에서 산채정식만 고집해왔다. 곰취 단풍취 산마늘 오가피 곤드레 두릅 참나물 장각 누룩취…. 30여 가지나 되는 반찬에 놀라고 씹을수록 감칠 맛 나는 산채맛에 또 한번 놀란다. 제각각 들기름에 볶아 참깨를 고명으로 뿌렸지만 씹을수록 향과 맛이 다르다.

 “오대산 나물은 5월 10일경이 최고의 맛이여. 다른 때는 냉동하거나 염장(鹽藏)해서 맛을 유지하지.” 이 사장의 솔직한 고백이 신뢰를 더해준다. 주변 대부분 식당에서 산채정식 1만5000원, 산채비빔밥이 7000원 안팎이다.
 

오대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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