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측면에서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외교의 중심지이다. 미국 워싱턴, 벨기에 브뤼셀 다음으로 대사관이 많은 나라이며 아프리카연합(AU) 본부와 유엔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 본부가 위치한 나라이다.
아프리카 외교의 중심지라고는 하지만 워싱턴, 브뤼셀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이곳을 ‘원조 외교의 중심지’라고 표현한다. 국제사회의 질서와 경제를 논하는 국제 외교의 장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들어오는 원조 창구로서의 중심지라는 말이다. 선진국으로부터 어떻게든 원조를 더 받아 가려고 경쟁하는 아프리카 국가 간의 눈물겨운 외교 각축장이 이곳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이다.
아프리카 국가가 한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원조 공여국으로서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 필자가 근무하는 일 자체가 대한민국 원조사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병원 옆에 독일의 원조를 받아 지은 멋진 병원이 하나 있다. 이 병원의 외관은 필자가 의대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베를린의 훔볼트 의과대학 병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그 실태를 봤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병원에서 당연하게 이뤄져야 할 위생관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세탁세제로 수술기구를 세척하고, 손빨래로 피고름이 묻은 리넨을 빨고 병실 안에서는 보호자들이 석유화로를 가져다가 환자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에게 소독기와 세탁기를 사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계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이들이 사용법과 운영기술을 배우지 못해 기계는 금방 고장 나버리기 일쑤다. 그 때문에 다시 누군가가 기계를 또 원조해 줄 때까지 옛날 방법으로 돌아가 버리는 악순환이 개원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참된 원조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매일 출근할 때마다 든다. 특히 필자의 병원과 옆 병원을 같이 바라볼 때는 더더욱 그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물질에 의존한 원조는 현지 사람들로 하여금 원조에만 기대게 할 뿐이어서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진정으로 원조받는 국가와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인적개발 원조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윤상철 KOICA 에티오피아사무소 협력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