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명의 수병들을 보내며
최남진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 내걸린 조문 구절이 허사(虛辭)처럼 느껴진다.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말이라기보다 이번만은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말처럼 들린다.
마음속으로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드리겠습니다’라고 고쳐 읽어본다. 답답했던 속이 좀 풀린다. 그러나 한순간일 뿐이다. 추모 행렬 속에 줄을 서 있다가 국화 한 송이를 장병들의 영전에 정성껏 바쳐도, 이 꽃 한 송이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다. 희생 장병에게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지만 죽음을 대가로 한 것이기에 삶보다 더 큰 영광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게 과연 자랑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적이 기습해 함정이 두 동강 나고 46명의 장병이 수장되었는데도 한 달이 다 되도록 적이 누구인지 말 못하는 나라. 그것도 누구의 소행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나라. 그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돌다리를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한들 ‘그 돌다리가 바로 그 돌다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답답하다. 언제까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북한을 향한 분노의 경고 한마디가 그렇게 두려운가. 이는 마치 북한이 칼자루를 쥐고 남한이 칼날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칼자루를 쥔 자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칼날을 쥔 자는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비상사태의 원인을 예단해야 할 고유한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 발발 초두에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
지금 꼭 우리가 그런 상황이다. 한마디 격노의 일성도 없이 물증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고, 북한 소행이다 아니다 서로 갑론을박하는 동안 독은 점점 대한민국이라는 온몸에 퍼져 결국 우리를 죽게 만들 것이다.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 햇볕정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그동안 남한이 북한에 보낸 ‘화해의 햇빛’은 지금 ‘기습공격의 그늘’이 되어 우리 아들들을 수장시키고 말았다.
어떤 이는 그럴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화해무드로 애써 조성해 놓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그 무드를 해치는 바람에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그래서 원인 제공은 이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에 있다고. 설령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북한은 우리 장병을 저렇게 떼죽음 당하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왜 북한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잘못부터 먼저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안함 사건만이라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잊기 잘하는 국민이다. 지금 천안함 장병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곧 잊어버릴지 모른다. 살아서 영웅이 되지 못하고 죽어서 영웅이 된 천안함 장병들이여! 부디 눈 감지 마소서. 두 눈 부릅뜨고 행여 우리가 당신을 잊지는 않는지 면면히 살피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잊으면 벼락처럼 야단치소서.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적을 응징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잊고 말 때에 천둥처럼 소리치소서. 그러나 오늘 이 영결의 순간만은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