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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리더 인터뷰]조광래 경남 FC 감독

입력 | 2010-04-30 14:22:56


경남 FC 경기장면.


1982년 발간됐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야구 만화가 있다. 영화로도 제작됐고 최근에는 공중파 드라마로 다시 방영될 정도의 대히트 작품이다. 잠재력은 있으나 각기 여러 사정으로 기성팀에서 뛸 수 없었던 탈락자들이 모여 지옥훈련을 통해 엄청난 기량을 갖춘 초특급 선수가 된 뒤 야구계에 돌풍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의 줄거리와 같은 일이 지금 야구가 아닌 프로축구 K리그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6년 도민구단으로 창단한 지 5년 만에 대기업이 후원하는 내로라하는 명문 구단들을 제치고 이번 시즌 K리그에서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경남 FC 프로축구단이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국가대표가 한명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노장 골키퍼 김병지(40)를 제외하고는 전원 무명으로 구성된 경남 FC는 현재 K리그에서 울산 현대, FC 서울, 수원 삼성 등 명문 팀을 포함해 총 15개 프로축구팀 중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한 지난시즌부터 홈구장에서 무패(8승2무) 행진을 하고 있다.

창단 후 첫 선두 질주라는 성적만이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경남 FC의 경기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경남 선수들이 펼치는 빠르면서도 정교한 '재미있는 축구'에 푹 빠져들게 된다.

이런 '경남 돌풍'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축구 전문가들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으로 조광래(56) 감독을 서슴없이 꼽는다.

조광래 감독


조광래 감독은 "잠재력을 가졌으나 이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던 선수들이 내가 추구하는 축구에 대해 이해를 하고 훈련을 통해 몸으로 익힌 기량을 드디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앞으로 갈수록 우리 팀의 막강한 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 감독은 "축구는 한마디로 패싱 게임이다. 그냥 패스가 아니라 강약 조절로 정교한 패스, 공을 받는 선수를 고려하는 동시에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고차원적인 패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그는 "따라서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고 보니 현역시절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과 함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등 명성을 떨쳤던 조 감독은 머리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진주중, 진주고와 연세대를 나온 그는 중고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 경남의 명문인 진주중과 진주고를 축구 특기가 아닌 시험을 쳐서 들어갔던 것.

사실 지금도 영리한 축구선수들이 많다. 현재 프랑스 AS 모나코에서 뛰고 있는 박주영은 고교 시절 지능지수(IQ)가 15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 중인 박지성은 영어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탁월한 언어 습득 능력을 갖고 있다.

조 감독은 "선수를 선발할 때 얼마나 영리하고 성실한가를 제일 먼저 본다. 그리고 슈팅이나 드리블, 패싱, 수비력 등 한 가지라도 특징이 있는 선수를 뽑는다"며 "나머지는 훈련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공격수 김동찬. 조 감독이 2007년 처음 경남 지휘봉을 잡았을 때 김동찬은 방출 대상이었다.

조 감독은 "팀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다른 선수들과 떨어져 혼자 조깅을 하던 동찬이를 불러놓고 같이 볼을 주고받으며 패스 훈련을 해보니 볼 터치가 좋았고, 고교와 대학 시절 한해에 40골 이상을 넣을 정도로 골 감각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며 "당장 방출을 취소시키고 전지훈련 기간 동안 패스를 한 뒤 잘 안 움직이는 것 등 나쁜 습관을 하나씩 교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경남의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한 김동찬은 2008년 FA컵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조 감독은 대우 로얄즈 감독과 수원 삼성 코치, 안양 LG와 FC 서울 감독을 거치며 현재 국가대표팀의 주전인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냈다. 그런 그가 도민구단으로 다른 팀에 비해 열악한 조건의 경남 지휘봉을 잡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 감독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주축인 기존 구단보다는 연습구장도 제대로 없고 훈련 여건도 안 좋았지만 백지 상태에서 내가 추구하는 축구를 펼칠 수 있는 신생 구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나를 믿고 힘든 훈련을 잘 견뎌준 선수들이 고맙고, 또한 어디서나 응원해주는 우리 팀 서포터스들에게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 시즌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 내가 이번 시즌 우리 팀 목표를 우승이라고 하자 웃는 소리를 들었다"며 "신나고 재미난 축구를 하면서 우승 목표에 한걸음씩 다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FC는 메인 스폰서인 STX로부터 연간 40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다른 구단에 비해 재정이 열악한 상태.

조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한명을 외국 팀에 이적시키면 많게는 수십억씩 이적료를 받을 수 있고 이런 혜택을 본 구단이 몇 군데 있다"며 "19세 이하 선수들에 대한 드래프트제를 없애고 전면 자유 스카우트제를 도입해 각 구단이 어린 유망주를 키워내 국내외 다른 구단으로 이적시키면서 받는 이적료로 구단 재정 등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각 구단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프로연맹 차원에서 제도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조 감독은 18일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해 경기를 지연시켜 현재 4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는 "올 시즌 들어 과격한 파울을 줄이고 실제 경기 시간을 늘려 팬들에게 서비스한다는 차원에서 심판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너무 경고를 남발해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면도 있다"며 징계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1992년 축구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던 조 감독은 향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나설 축구대표팀 사령탑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조 감독은 "기회가 주어져 국가대표팀을 이끌게 되면 현재 경남 선수 중 2~3명은 대표 선수로 뛸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다"며 "우리 경남 팀을 통해 프로축구가 재미있다는 소리를 듣고 더 많은 축구팬이 생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함안=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