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이/선안나 글·김영만 그림/44쪽·1만2000원·샘터
“피란 가는 거예요. 함흥이 조만간 불바다가 될 거래요.” 명호의 대답에 할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미군이 철수한다”며 “미군 철수가 끝나면 일본에 떨어진 것과 같은 원자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짐 싸서 떠나라. 오마니하고 동생을 잘 부탁한다.”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에도 명호네는 계속 흥남을 향해 걸었다. 헌병들이 길을 막아서면 산길로 돌아갔다. “오마니, 추워요.” 동생이 울음을 터뜨리면 명호가 업어주었다. 만삭인 어머니는 짐만으로도 힘에 겨워했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60주년. 이 책의 이야기는 6·25전쟁 가운데 흥남철수가 배경이다. 흥남철수는 1950년 12월 15∼24일 열흘간 군인과 피란민 20만 명이 중공군을 피해 남하한 것으로, 세계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해상 철수 작전이었다. 특히 이때 미국의 메러디스빅토리아호는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워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저자는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지난 역사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