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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우리는 오늘도 어디론가 간다 시간을 들고, 길 아닌 길 지우며”

입력 | 2010-05-01 03:00:00


최근 출가를 선언하고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한 중견시인 차창룡 씨의 신작시집. 승가에 귀의하기 직전 출간 준비를 했던 시집이다. 초반부는 사랑, 욕망, 삶의 덧없음에 대한 괴로움, 혹은 깨달음을 담은 시들이 주로 수록됐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간다//간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간다는 것은 커진다는 것/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시간은/어린 짐승이 크는 것을 바라보는 것/다 큰 짐승이/작아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시간만큼 무거운 것은 없지만/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여서/시간을 들고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기본이다//길 아닌 길을 지우며 우리는/오늘도 간다”(‘달’)

재개발이나 시위 현장 등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시들도 눈에 띈다. 여전히 개발주의적인 논리가 만연한 곳, 거기에 밀려 더 좁고 가파른 벼랑 끝으로 밀려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노래한다.

“오래전에 쓸모 없어진 우물은/굳게 입을 다물었지만//지나가는 한 중년 신사가 뚜껑을 열어보았다//뚜껑을 여는 순간/우물 속에 숨어 살던 절망이란 처녀새가/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소문//오랫동안 비가 내리다 그치자/아파트가 솟아올랐다”(‘흑석3동 재개발구역에는 우물이 있었다’)

차창룡 작가

일상의 모순과 고통, 번뇌를 표출한 시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인도 여행 위에서 펼쳐지는 종교적 사유로 확장돼 간다.

“당신은 누구의 화신도 아닌/당신 자신입니다”로 시작하는 ‘붓다’, “우리의 사랑은 신화입니다”라고 노래하는 ‘상카샤’ 등은 불교적 색채가 짙은 시들이다. 삶의 근원, 생의 원형을 찾아가는 시인의 방랑은 여기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하다.

“당신의 육신에 불이 붙었습니다/알뜰했던 당신의 육신이/임무를 끝내고 영원히 잠든 날./당신의 육신에 불이 붙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이었습니다/불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불이었습니다…그 눈물을 모아 만든 거대한 탑에서/만나기로 약속했지요?/언제였던가요?/그때 뵙겠습니다”(‘쿠시나가르’)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