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쇼핑/주디스 러바인 지음·곽미경 옮김/380쪽·1만5000원·좋은생각
1년 동안 꼭 필요한 물건외에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면?‘굿바이 쇼핑’의 저자는 1년 동안 늘 새롭고 더 좋아 보이는 물건이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1년 뒤, 저자는 “평온하다”고 말한다. 그래픽 박초희 기자
○ 와인과 면봉은 생필품일까
무엇을 사고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남편 폴은 “이탈리아인에게 와인은 우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필수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귀가 가려울 때 안쪽까지 시원하게 후빌 수 있는 면봉은 생활에 꼭 필요할까? 그냥 작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사치품이었던 걸까? 굳이 고급 티슈를 사야 할까? 저렴한 두루마리 휴지로는 안 될까? 차라리 신문지를 사용하면? 이처럼 “사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사왔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문화상품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에게 특히 ‘새로 나온 것이라 읽고 싶다’ ‘새로 나온 것이라 읽어야 한다’는 욕구는 상상 이상이다. 7월 1일, 이렇게 쓴다. “정치 대중문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화씨 9.11’을 보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았다. 내 심정은 미국 문화에서 배제된 것 같은 느낌 이상이었다. 마치 몽골에 던져진 것 같았다.”
5월 1일, 참을 수 없는 권태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쇼핑을 나가면 무료함은 없어질 것이다. “소비는 권태를 이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회하지만, 그건 단지 무료한 시간을 채워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많은 행복과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미를 바라보는 연습”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6월 26일은 ‘첫 번째 타락’이라고 기록한 날이다. 중고용품점에서 옷을 산 것이다. 제지하는 남편에게 “입을 게 하나도 없다”고 외치며 순간 화를 낸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쇼핑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인된 ‘나쁜’ 행위다. … 이런 죄악들이 경제에 생명을 부과한다. 이 죄악을 범하는 데서 경제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책은 단순히 소비를 그만두는 과정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처럼 소비가 낳는 개인적, 사회적 효과에도 주목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데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더 비싼 물건을 사며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다.
○ 소비를 그만두자 풍요로워졌다
9월 27일, 소비 없는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새로 구입한 중고 욕조에 어떤 색깔의 페인트를 칠할지 고민한다. 이 색깔 저 색깔을 생각하며 빠져들지만 곧 “소비가 세상을 작아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무엇을 고르고 살지 고민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욕조 페인트 색이 지구온난화, 대통령 선거, 전쟁 같은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됐던 것이다. 그 같은 고민을 그치자 세상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사지 않기 프로젝트는 우리를 기계화, 대량화, 혹은 속도나 특수효과가 아닌, 인간과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흥겨움이 배가되는 오락거리가 존재하던 19세기로 보내버렸다.”
소비를 그만둔 결과 사람들과의 교류, 공적인 생활이 더 풍요로워졌다. 공짜 공연을 보기 위해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다녔다.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도서관 운영이 얼마나 열악한지,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직접 목격했다.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경험담을 나누기도 했다. 마침내 ‘아무것도 사지 않기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12월. 주변 사람들은 “뭘 살 거야?” “얼마나 아꼈어?” “신나?”라고 묻는다. 하지만 저자는 평온함을 느낀다. 마침내 12월 31일 밤.
“오늘 나는 평온하다. … 소비생활을 접으면서 폴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 앞에 많이 나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의 골목골목과 더 친밀해졌으며 서로에게도 그러했다. 폴의 말처럼 ‘일상을 껴안으면서’ 말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동아뉴스스테이션 = 고가 제품 선호-큰 씀씀이…“웰컴! 차이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