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침몰에 가정법 동원 의혹 제기… 신중한 접근 아쉬워사실 - 논리적 근거를 갖고 의문점 파헤쳐야당국 오락가락… 인터넷엔 온갖 가설 나돌아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군사기밀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 박명식 미디어연구소장, 이민웅 위원, 정성진 위원장, 윤영철 위원, 최영훈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 이훈구 기자
―천안함 침몰 후 언론이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군이 여기에 미숙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군사기밀이 상당수 노출됐습니다. 여기에다 정치인들도 한건주의 식으로 군사기밀을 공개했습니다. 이 사건 보도 과정에서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군사기밀의 보호라는 측면이 상충하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정성진 위원장=먼저 46명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사건 보도에서 미확인 사실에 대한 의혹 제기는 넘쳐 났으며 국가 안보 차원의 의연하고 냉철한 분석 및 대응책 모색은 모자랐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시하는 게 언론의 속성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해선 균형감과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돌발사고로서 인명구조에 초점이 맞춰지고 실종자 가족의 슬픔을 위무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방송과는 달리 신문에는 정서, 인기, 즉물적 흥미보다 이성, 논리, 균형이 더 요구됩니다.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시각보다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을 제시해야 합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일부 미흡한 점은 있겠으나 동아일보는 국가 안보와 관련되는 문제임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추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선진국의 언론은 명백한 증거를 얻기 전에는 이처럼 요란한 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언론의 수준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합니다.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윤영철 위원=추측 보도뿐만 아니라 예단하는 보도, 가정법을 쓰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만약 북한이 개입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렇게 대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식으로 가정법이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죠. 가정법에 기댄 채 예측하면 사실에 바탕을 둔 보도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시바삐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사건이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서 보도해야 했습니다. 군사기밀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시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사안도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 위원장=군과 정부의 태도에서도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군은 작전 사항이나 허점이 노출되는 것도 걱정했겠지만 유가족과의 관계를 너무 우려하다 보니 불신을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정부는 나름대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고려를 했겠지만 단호한 의지라든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말이 미묘하게 엇갈렸던 것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위기대응팀을 가동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우왕좌왕했습니다. 위기대응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죠. 과거에 역시 서해에서 소규모 교전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적 사상자 수를 정확히 밝혔다가 우리 감청능력이 드러난다며 수는 밝히지 말 것을 다시 요청했습니다. 기자들이 모두 ‘많은 사상자’ 식으로 보도하며 협조했습니다. 참고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결정적인 군사기밀을 흘린 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당국입니다. 알리지 않아야 할 것을 국회에서 이야기하고 국회 국방위원장은 언론에 밝혔습니다. 언론은 국익을 놓고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부족했습니다. 일선 기자들은 평소 군이 기밀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너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 기밀인지를 판단하는 데 혼선을 겪는다고 합니다. 기밀의 가치가 없는 것은 군 스스로 과감하게 공개하는 게 현명한 자세라고 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입니다만 과거와 달리 인터넷에 일단 루머가 나오면 확대재생산이 이뤄집니다.
윤 위원=사건 발생 초기에 사실관계가 자꾸 엇갈리는 등 혼선이 빚어지니까 인터넷에 온갖 시나리오가 다 나왔습니다. 일부 정치인은 이런 것을 보고 추측으로 발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럴 땐 공신력 있는 언론에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사실을 확인해 줘야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 인터넷에 어떤 설이 떠돈다고 보도하거나 그 설의 일부라도 인용하면 그 사실을 확인해 준 것으로 증폭되는 것이 인터넷의 속성이므로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 보도를 무시하려고 해도 국회의원이 물으면 장관 등 정부 당국자는 어떤 식으로든 답변하게 되고 언론은 보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터넷 보도 자체가 생명력을 얻어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신문은 실시간으로 보도해야 하는 데다 누리꾼들은 자극적인 것을 찾으니 메이저 언론의 인터넷신문이라도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결국 편집자의 양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확인이 안 되고 국익에 반하는 것은 아무리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더라도 자제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른바 언론을 표방하는 군소 인터넷매체는 대부분 그러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런 매체와 메이저 언론이 인터넷상에선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겁니다.
윤 위원=군과 언론, 언론학자들은 이번 사건 및 보도와 관련한 백서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군이든 언론이든 시스템을 정비하고 가이드라인이며 매뉴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나온 얘기 가운데 어떤 것이 헛소문이었고,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그걸 근거로 발언했는지 등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정 위원장=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군사기밀의 보호를 조화시키는 것도 헌법적 가치에 근거해 판단해야 합니다. 알 권리도 일종의 자유권인데 자유권도 국가 안보,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면 제한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문은 건전한 여론 형성, 공공의 복지 증진을 위해 힘을 다해야 할 뿐 아니라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부득이 보도할 때는 그 점을 분명히 알려야 합니다. 그게 신문윤리강령의 정신입니다. 언론은 국민을 오도하지 않을 책임이 있음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