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 인사 - 예산권 막강지방의회, 감시는커녕 유착비리-추문 끊이지 않는데유권자 총선보다 무관심
“우리 지역구의 시장은 ‘하느님의 사촌형’으로 불린다.”
영남권의 한 한나라당 재선 의원은 평소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하고 있다. 지방의 기초단체장은 주요 개발사업의 인허가권을 대부분 쥐고 있는 데다 지방의회의 견제도 형식에 그치고 있어 지역에선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의 공천권을 쥐고 있지만 2년 뒤 치르는 총선을 의식해 오히려 지방 권력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 지방권력은 부패와 비리의 온상
“잊지 마세요 6월 2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 6·2 동시지방선거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감사원이 지난달 말 발표한 지역 토착비리 점검 결과에서도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가 업체로부터 3억 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민 군수는 위조여권으로 출국하려다 들통 나자 잠적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 여주군수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2억 원을 건네려다 현장에서 적발돼 구속되기도 했다.
민선(民選) 단체장 선거가 처음 실시된 1995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방권력 시대가 문을 열었지만 지방권력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 무너져 버린 ‘견제와 균형’의 원칙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유권자들이 같은 당에 연달아 표를 몰아주는 ‘줄투표’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장을 감시하지 않고 함께 부패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지방권력에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져 버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230개 자치단체 중 78%인 179곳에는 감사 전담부서가 아예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자체적으로 공직 사회를 감시하는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팽개쳐 버린 상태에서 지방권력 정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선 일부 지방언론과 지방권력의 유착도 고질적인 병폐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자치단체가 배분하는 광고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지방언론들에 엄정한 비판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지방권력이 각종 이권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현재의 민도(民度) 수준에서 기초단체장까지 선거로 뽑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 유권자의 심판이 개혁의 시발점
지방권력 견제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권한은 지방 정부로 꾸준히 이양돼 왔지만 유권자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활동에만 주로 관심을 두고 지방자치제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결국 유권자의 ‘의식 혁명’과 ‘선거를 통한 심판’ 없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자치를 꽃피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