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한 선교사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두고 이런 저주를 퍼부었다. 온갖 악행과 마약, 매음으로 신의 심판을 받아 철저히 멸망당한 성서 속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상하이보다 오히려 낫다고 본 것이다. 미국의 중국계 작가 스텔라 동은 저서 ‘상하이: 타락한 도시의 흥망’에서 현대 중국 성립 이전의 옛 상하이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세계열강은 1842년 난징(南京)조약으로 강제로 상하이의 문을 열고 이곳을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치외법권을 가진 조차지(租借地)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상하이는 국제도시로 커졌지만 한 공원에 내걸린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푯말처럼 이는 몰락하는 중국의 치욕이기도 했다.
40여 년 뒤 덩샤오핑(鄧小平)은 상하이에 내재한 국제성을 주목했다. 그는 1990년 상하이 황푸 강 동쪽 푸둥(浦東)지구 개발로 상하이의 긴 잠을 깨운다. 개혁개방 깃발을 든 지 꼭 11년 뒤의 일이다.
덩은 당시 먼저 개방해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던 선전(深(수,천)) 주하이(珠海) 샤먼(廈門) 등과 상하이를 이렇게 비교했다. “선전은 홍콩과 마주 본다. 주하이는 마카오를, 샤먼은 대만을 마주 본다. 상하이 푸둥은 태평양, 즉 세계를 마주 보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눈앞에 펼쳐진 국제도시 상하이의 모습은 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년이 채 걸리지 않아 상하이는 국제도시로 다시 세계무대에 복귀했다. 과거의 오명은 씻은 지 오래다. 세계의 대표적 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진출한 국제 금융허브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어느덧 ‘동방의 진주’라는 별명을 지닌 홍콩을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매년 작은 변화가 있고 3년마다 큰 변화가 있다’는 상하이 주민들의 표현처럼 이 도시는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경제 과학 문화 올림픽’이라 불리는 엑스포가 이 도시에서 막을 올렸다. 2년 전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중국의 굴기(굴起·우뚝 일어섬)를 상징한다면 이번 엑스포는 이에 더해 상하이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