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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대책 추진 100일 긴급점검]겉도는 대책, 취업애로계층 양산

입력 | 2010-05-04 03:00:00

일할 의사와 능력 있는데… ‘그림자 실업’ 182만명

자녀 짐까지 짊어진 50대
퇴직후 파트타임으로 근무
6년새 2배 가까이 증가

기댈 곳이 없는 고졸자
경제가 급격히 악화됐을 때
16만명이 일자리 직격탄





올해 2월 서울시내 대학의 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김동민(가명·28) 씨는 3월부터 매일 오전 9시 대학으로 출근한다. 졸업생이지만 학교의 배려로 하루 4시간씩 컴퓨터실 조교 업무를 맡으면서 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통계청은 한 주에 1시간 이상 일을 하면 취업자로 분류하기 때문에 그도 엄밀하게 말하면 취업자이지만 이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김 씨는 “매일 입사 원서를 쓰는 게 일인데 내가 왜 취업자냐”고 반문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올해 1월 21일 1차 국가고용전략회의 때 ‘취업애로계층’ 개념을 처음 발표했다. 김 씨처럼 주 36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와 주부, 취업준비생 등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취업애로계층에 속한다.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첫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연 지 곧 100일을 맞는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발표한 각종 일자리 대책은 시행 3개월이 지났지만 상당수가 여전히 겉돌고 있다.

동아일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2003년 이후 8년간 취업애로계층을 학력별, 연령별, 산업별로 분석한 결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어 있는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고학력자와 고교 졸업자, 50대 이상 연령층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구직 활동을 사실상 포기하고 ‘그냥 쉬고 있다’고 답했다. 꼭 필요한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서 한국 경제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50대 아르바이트족’ 급증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20년을 근무한 백모 씨(52)는 2005년에 사표를 냈다. 임원 승진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회사로부터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았기 때문. 음식 장사를 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손님이 크게 줄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들을 뒷바라지해야 할 처지라 무작정 쉴 수도 없었다. 올해 초부터 친구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에서 부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50세 이상 취업애로계층은 2003년 28만5569명에서 지난해 53만5146명으로 2배가량 급증하면서 전 연령대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은퇴 후 취업 의사나 능력이 여전히 있는데도 정규직 일자리가 없는 등의 이유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대신 아르바이트 등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50세 이상 연령대의 취업애로계층 중에는 36시간 미만 단기 근로자(2009년 40.7%)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고령층 아르바이트족(族)’이 늘고 있음을 입증했다.

김현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층이 실업문제로 경제 자립을 늦게 하다보니 그 짐을 50세 이상 고령층이 짊어지고 있다”며 “이들은 가장의 의무 때문에 임금이 낮은 36시간 단기 일자리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 30대 ‘취업 장수생’ 넘쳐나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근처 공무원 시험 학원가. 가방을 멘 수험생들이 인근 식당을 가득 채웠다. 이 중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학생뿐만 아니라 30대로 보이는 ‘취업 장수생’도 많았다.

N학원 앞에서 만난 안모 씨(32·대학원 졸업)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사법시험만 준비했는데 지난해부터는 공기업과 대기업 법무팀 시험도 같이 준비한다”며 “처음에는 고시만 준비하다가 몇 년 낙방하면 일반 기업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게 통상적인 코스”라고 말했다.

 취업애로계층 중 2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학력자 문제가 심각했다. 이들의 비율은 2003년 25.1%에서 지난해 28.7%로 뛰었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졸업생(41.3%)이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청년실업률에도 포함되지 않는 ‘숨어 있는 실업자’다.

취업애로계층 중 가장 많은 비중(47.1%)을 차지하는 고졸 출신자는 위기에 가장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오며 경제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을 때 고졸 취업애로계층은 69만6000명에서 85만9000명으로 급증해 이 기간 학력별로 보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취업애로계층 25%는 아예 구직활동 안해

○ 구조적인 일자리 감소가 문제

취업애로계층 중 약 4분의 1은 구직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일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들이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학력층 중 27.4%는 “이전에 찾아보았지만 일거리가 없어서”라고 답했고, 고졸 취업애로계층도 31.3%가 같은 응답을 했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취업애로계층 중 ‘진학 및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쉬고’ 있다. 고학력층의 경우 2003년 통계청 조사에서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은 31.6%였지만 지난해는 40.8%로 늘었다. ‘준비해도 안 되더라’는 패배의식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정유훈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기 사이클의 단축으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면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계속 줄고 있다”며 “이 때문에 취업애로계층이 일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핵심 해법”이라며 “장기적으로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에 초점을 맞추고, 단기적으론 취업애로계층에 대한 직업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동아일보·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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