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최남진
궁지에 몰린 우리의 ‘내일’
멀리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진
어른스러운 어른이 지켜줘야
해마다 신록이 우거지는 5월이면 어린이날을 비롯한 기념일과 휴일로 흥겨운 분위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돌아왔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괜히 아이들 볼 낯이 없는 이유는 왜일까? 조두순 사건, 부산 여중생 사건을 비롯해 어린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의 부끄러움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자기 방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느라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중학생 아이의 말이 귀에서 맴돈다. “평생 이대로 살면 안 되나요?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일하면서 내가 좋은 것을 하는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 힘들고, 혹시 명문대를 나와도 적성에 맞는 직업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차라리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평생 재미있게라도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차근차근 자신의 주장을 펴는 아이의 표정에는 인생을 다 살아버린 어른의 허무함이 잔뜩 서려 있어 가슴이 아팠다.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희망과 꿈을 놓아버린 이 청소년의 절망이 이 땅의 많은 어린이, 청소년의 현주소가 아닐까?
이런 사회악은 아이에게 크나큰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남겨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을 차단해 버린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망과 꿈은 불가능하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아이들은 왜곡된 꿈과 엉뚱한 소망을 품는 어른으로 자라 또 다른 사회악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마저 형성한다.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으로 흩어진 어린이 및 청소년 보호와 관련된 정책과 제도를 하루빨리 통합하여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에서 철저히 보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자유의지를 꺾어 어려서부터 경쟁시키고, 한번 대열에서 낙오하면 영원히 제외되는 현 교육환경은 어린이의 꿈과 소망을 빼앗는 주범이다. 재능이 있는 아이는 무한경쟁을 해야 하고 부족한 점이 있는 아이는 들러리 역할만 하다가 일탈해 버리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학교 현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아이의 적성과 개성을 무시한 채 점수 올리기 사교육 현장으로 아이를 내몰고, 성적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가 험악해진다. 이렇게 안팎으로 아이를 들볶으며 똑똑하게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더 떨어지는 모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두뇌 발달 연구에 의하면 사춘기가 되기까지는 아직 아이의 재능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특히 유아의 경우 여러 영역의 발달 속도가 달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어려서부터 영어 교육을 시켜야 효과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유아기부터 영어 공부에 시달리게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반에 들기 위한 선행학습은 기본이다. 이러다 보니 너무 많은 아이가 개성을 잃고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는 지적 호기심의 싹을 틔우지 못한 채 자란다. 남다른 사고력과 창의성만이 미래의 성장 동력임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배움의 행복을 앗아가는 교육환경은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비효율과 아픔을 초래한다.
세계적 경제 불황과 인구 노령화가 지속되고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사회의 문제가 이면에 도사리고 있으나 지나치게 외적인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우리 어른들의 내면적 미성숙 역시 큰 영향을 미친 결과다. 물질적인 면에 초연하며 내면적 덕목과 행복을 강조했던 선조의 지혜를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천천히 원칙대로 행복하게 사는 건강한 어른이 진정 필요하다. 2010년 5월의 푸른 하늘을 가득 채울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올바른 시각과 제대로 된 노력이 중요하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