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한국인에게도 같은 내용을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결과는 같았다. 등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몇몇은 정확하게 북한산과 인왕산을 구분했지만 청와대 뒤의 산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전 세계의 어느 수도에도 서울처럼 매력적이고 웅장한 산을 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장 훌륭한 자산인 이 산은 서울의 다른 유명한 자산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진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위해 서울로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사람 중 누구도 “오늘 아침 인왕산의 무지개 봤어요?” 또는 “비가 그친 후에 북한산이 얼마나 가깝게 보이는지 보셨어요?”라고 직장 동료에게 묻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환경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에 콘크리트로 된 공원을 만들어내느라 많은 돈을 쓰는 대신 서울 고유의 자산인 이 산에 대해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할 때가 됐다.
산을 개발하자는 말은 아니다. 산은 개발해야 할 대상이 아닐뿐더러 개발할 필요가 없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한 계단조차도 산의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다. 산에 어떤 인공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산을 우리의 삶에 좀 더 밀착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의 산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브랜드를 부여하자는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산의 역사를 부활시키는 일이다. 외국 관광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서울의 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홍보책자나 안내 표지판을 통해 널리 알릴 수 있다. 실제로 이 산의 역사 속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적지 않다. 과거 청와대 뒤에 있는 산은 백악산이라 불렸다. 한국의 산을 오랫동안 연구한 데이비드 메이슨 씨에 따르면 백악산은 풍수지리학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산이다.
사람들은 백악산에 정녀부인이라고 하는 여자 정령이 있으며, 정녀부인은 남산의 남자 정령인 국토신과 함께 서울을 수호하고 조선왕조를 재해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어 왔다. 사람들은 매년 이들의 영혼결혼식을 치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1591년 권필이라 불리는 젊은 남자가 이런 전설을 미신이라며 탐탁지 않게 여겨 정녀부인을 모욕하는 행위를 했다. 그러자 정녀부인이 그의 꿈에 나타나 분노하면서 그와 조선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16세기 무렵, 산의 북동쪽 언덕에 비밀의 집이 만들어졌다. ‘밀덕’이라 불리는 동굴 근처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부정한 행위를 벌이곤 했다. 어느 날 유명한 학자 이항복 선생이 가짜 가발과 긴 수염을 달고 산신으로 변장을 했다. 그는 비밀스러운 장소 근처의 높은 바위에 앉아 있다가 그곳을 드나드는 여인을 불러 “나는 이곳의 산신이다. 죄를 고백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나 부정한 행위를 은폐하려는 자는 엄히 벌을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놀란 여인은 잘못을 고하고 왕은 산의 영험한 정기를 흐리는 이 장소를 없애도록 명령했다.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겠지만 관광객을 위한 스토리텔링 경쟁력은 충분하다. 관광홍보책자나 표지판을 통해 소개하거나 영혼결혼식을 이벤트성 행사로 부활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봄 직하다. 스포츠 단체나 사회단체, 시 당국이 산의 이름을 활용한 행사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왕산 마라톤 대회와 같은 스포츠 행사는 어떨까.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 묀히스베르크와 카푸치너베르크를 시의 관광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역시 도시 중심에 있는 두 개의 산인 캐슬록과 솔즈베리 크래그의 이름을 활용한 행사를 운영한다. 아직도 청와대 뒷산 이름을 모르시겠는가? 그 산의 이름은 통칭 ‘북악산’이다. 일제가 이름을 바꿨고 최근 문화재청이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백악산이란 옛 이름을 복원했다.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