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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유품으로 돌아온 아들 일기장 태웠습니다”

입력 | 2010-05-06 03:00:00

천안함 故 나현민 상병 아버지“기름때 얼룩진 글씨 볼 때마다 가슴 아파그냥 군대생활 좀 오래한다 생각해야지”




 침몰 한 달 전 조촐한 파티   천안함이 침몰하기 한 달 전인 올해 2월 말 함내에서 열린 조촐한 파티에서 고 나현민 상병(왼쪽)과 함장인 최원일 중령이 단란하게 포즈를 취했다. 케이크를 대신해 초코파이를 쌓아놓은 위에 촛불이 켜져 있고, 뒤쪽 TV 화면에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장면이 나오고 있다. 이 사진을 보관하고 있던 최 함장은 최근 이 사진을 나 상병 가족에게 전달했다. 사진 제공 나재봉 씨

천안함 희생 장병인 고 나현민 상병(20)의 아버지 나재봉 씨(52·전사자가족협의회 대표)는 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 희생자 가족 숙소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나 상병이 생전에 천안함에서 생활하며 쓰던 물건들이 담긴 적송(赤松)함과 여행용 가방이었다. 천안함을 인양한 뒤 사물함 등에서 찾아낸 유품을 해군 측이 가족에게 전달한 것. 해군 장교가 건네준 가로 25cm, 세로 30cm, 높이 10cm의 태극기와 해군기 동판이 부착된 유품함을 열자 매캐한 기름 냄새가 났다. 물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문화상품권, 현금 등이 있었고, 이것들을 다 꺼내자 맨 안쪽에서 겉장이 뜯겨 나간 분홍색 공책이 한 권 보였다. 나 씨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들의 일기장이었다.

“농구 하고 싶다.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기타도 배우고 싶다.” 기름으로 얼룩덜룩했지만 검은 수성펜으로 깨알같이 적어 내려간 글씨는 아들의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도 이런 걸 많이 적었어요. 군대 있으니까 밤에 할 일이 없어 일기나 열심히 쓴 모양입니다.” 5일 만난 나 씨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했다는 걸 잔뜩 적은 것을 보니 아버지로서 미안하고 참 마음이 안 좋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일기장은 바닷물에 잔뜩 불어 서너 장이 겹쳐 있어 잘 펴지지 않았지만 해군에 입대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천안함에서 보낸 나 상병의 하루하루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뭍 생활에 대한 동경과 제대 후의 계획,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밖에 나가면 해외여행 가야지.”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겪어보는 해군 생활에 대한 고충도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야, 보고 싶다. 네가 없어서 너무 힘들어.” “일이 어렵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새 아들의 일기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간 나 씨와 부인 김옥순 씨(51)는 이 일기장을 태우기로 했다.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나 가슴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나 씨는 다음 날 제2함대 측에 연락해 아들의 유품을 태우고 싶다고 전했다. 나 상병과 같은 방을 쓴 고 조지훈 상병(20)의 가족도 같은 뜻을 보여 두 동료의 유품은 마지막을 함께하게 됐다. 숙소 옆 공터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일기장과 옷가지, 고인이 생전에 부치지 못한 편지 몇 통을 넣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어머니 김 씨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현민아, 현민아.” 나 상병의 유품들은 어머니의 흐느낌을 뒤로한 채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어린이날인 5일 나 씨는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거리를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자식은 나이를 먹어도 부모에겐 다 어린애야”라며 아들을 회상했다. 입대 직전인 지난해 이맘때쯤 아들이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던 나 씨의 가슴에 이날은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냥 군대에 좀 오래 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그런데 아들 놈 일기장 괜히 태웠나 하고 가슴이 허전하니….” 나 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동영상 = “천안함 영웅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