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림의 ‘바지락 줍는 사람들’에서>
요즘 남서해안 개펄에 바지락이 바글바글하다. 아낙네들이 호미질 할 때마다 “바지락 바지락” 소리가 난다. 호미날에 바지락껍데기 닿는 소리다. 고무장화를 신은 아낙네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바지락 바지락” 바지락껍데기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지락칼국수를 먹을 때 수북이 쌓이는 바지락무더기에서도 “바지락”소리가 난다. 입 벌린 껍데기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다. 사람들은 바지락 속살만 이빨로 살짝 떼어 먹고, 상 위에 어지럽게 패총을 만든다.
바지락은 4∼6월이 제철이다. 산란기를 앞두고 속살이 탱탱하게 꽉 찼다. 6월이 지나 장마철이 오면 젓갈로나 쓰인다. 어민들은 개펄의 양식장에서 바지락을 키운다. 종패를 뿌린 뒤 호미로 군데군데 움푹하게 파주면 바지락종패가 그곳에 기어들어가 산다. 지난겨울은 추위가 맵고 길었다. 올봄 바지락 씨알이 예년보다 작은 이유다.
바지락은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에게 꼭 필요한 철분과 아연이 풍부하다. 뽀얗게 우려낸 바지락국물은 술꾼들 속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간 보호와 황달에 좋다. 바지락 속에 들어 있는 글리코겐이 간을 보호하고, 메티오닌 시스틴 등 아미노산이 해독작용을 한다. 콜레스테롤 흡수를 방해하는 타우린 성분도 들어 있다. 바지락껍데기는 칼슘 덩어리이다. 식은땀을 자주 흘리는 약골들에게 달여 먹이면 좋다. 껍데기를 말린 뒤 가루로 빻아 헝겊주머니에 넣고 팔팔 끓이면 된다. 신장이 나쁘거나 오줌소태에도 바지락 국물이 효과가 있다.
조개는 3가지가 있다. 첫째 껍데기가 나사모양인 것(고동), 둘째 껍데기가 두 장인 것(대합 홍합 바지락 꼬막), 셋째 껍데기가 한쪽에만 붙어 있는 것(전복)이다. 바지락은 조개 종류에서 가장 흔하고 싸서 널리 쓰인다. 굴 홍합 다음으로 많이 나는 조개다. 개펄에 가보면 흔전만전이다. 바닷가 어느 마을이나 껍데기가 널려 있다.
바지락은 천연조미료이다. 달면서도 시원한 감칠맛을 듬뿍 내준다. 된장국 칼국수 등에 바지락 몇 개만 넣으면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새록새록 우러나온다. 바지락국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팔팔 물이 끓을 때 바지락을 넣는다. 금세 허연 쌀뜨물 같은 것이 우러나온다. 여기에 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파 부추 콩나물 등을 취향에 따라 넣어 먹으면 된다. 바지락이 끓을 때 위에 떠오르는 거품은 수저로 걷어내는 게 좋다. 참고로 냉동조개를 찬물에 넣은 채 끓이면 껍데기가 벌어지지 않으므로 꼭 물이 끓을 때 넣어야 한다.
조개는 모래를 토해내게 해야 한다.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의 소금물에 하룻밤 정도 담가 놓으면 된다. 맹물은 조개가 숨을 쉬기 어렵기 때문에 해감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민물에서 잡히는 재첩은 맹물에서 빼야 한다.
바지락무침은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새콤달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갓 캐어낸 바지락에 돌미나리 배 오이 양파 참나물 등을 넣고, 양념장으로 무쳐내면 된다. 막걸리식초와 매실 엑기스도 빠지면 안 된다. 목포 해촌식당(061-283-7011)이 이름났다.
바지락죽은 바지락에 찹쌀 애호박 다진마늘 참기름 소금 통깨 등을 넣어 끓인 것이다. 부안변산의 식당 원조바지락죽(063-583-9763)에선 뽕잎가루를 넣은 뽕잎바지락죽이 유명하다. 뽕잎가루반죽에 더덕을 넣어 부친 뽕잎바지락전과 뽕잎바지락무침도 눈길을 끈다. 부안 변산온천산장바지락죽집(063-584-4874)에선 쌀 녹두 바지락에 당근 파 마늘 등을 넣는다.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면 왜 그렇게 트림이나 방귀가 잦을까? 배 속에서 가스가 나올 때마다 시큼털털한 개펄냄새가 난다. 바지락냄새가 바글바글 풍긴다. “바지락바지락” 꿈틀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내 배 속 개펄에서 바지락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가보다.
‘어금니 갈아 끼우는 동안/한 달 가까이 조개속살을 먹고 살았다/…그중에도 제일로 많이 먹은 게/흔하고 값싸고 맛있는 바지락이다/먹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삼시세끼 조갯살만 먹고/한 일주일 지나면서부터는 트림을 하거나/방구가 나올 때마다 희한하게도 그 속에서/매콤시큼한 개펄냄새가 나곤 했다’ <정양의 ‘개펄냄새’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