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5대 혁명가극으로 ‘꽃파는 처녀’ ‘피바다’ ‘당의 참된 딸’ ‘금강산의 노래’ ‘밀림아 이야기하라’를 내세우고 있다. 이 중에서도 ‘피바다’는 김일성의 주체적 문예사상을 온전히 나타낸 북한 최고의 혁명가극이라고 자랑한다. 원제(原題)는 김일성이 1936년 만주에서 만들었다는 ‘혈해(血海)’로 알려져 있다. 일제와 지주에 맞서 투쟁하다가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윤섭의 아내가 자식들을 혁명투사로 훌륭히 키운다는 줄거리다. 북한은 외국에서 손님들이 방문하면 ‘피바다’를 관람하라고 소매를 잡아끈다.
▷‘피바다’란 이름도 살벌하지만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예술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체제선전 도구에 가깝다. 북한의 모든 예술 분야가 세련된 눈으로 바라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문화혁명기에 연극 영화를 사회주의 이념의 선전선동 도구로 여겼던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예술성 상업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모했다. 북한의 예술은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정당화하는 박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바다가극단’은 북한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단체다. 1946년 창단된 북조선가극단이 1971년 혁명가극 ‘피바다’를 초연하면서 국립가무단 방송음악단을 흡수 통합해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단원 수는 380여 명. 중국중앙(CC)TV는 4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맞춰 피바다가극단이 베이징에서 공연하는 ‘홍루몽’을 상세히 소개했다. ‘홍루몽’은 중국 명나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과 희비(喜悲)를 다룬 고전소설. 봉건주의 타도의 이유를 가르쳐 준다 해서 사회주의의 교과서처럼 여겨진다.
▷피바다가극단의 ‘홍루몽’은 중국의 대표작을 북한 대표 가극단이 공연하는 점에서 북-중 우호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1961년 김일성 주석과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함께 중국에서 관람했다. 지난해 ‘북-중 친선의 해’를 맞아 김 위원장의 지도로 현대판 가극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같은 해 10월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도 김 위원장의 안내로 평양대극장에서 관람했다. 대한민국 해군 46명의 피로 서해 바다를 물들인 직후에 중국의 한복판에서 ‘피바다’라는 이름의 가극단이 공연을 하고 있어 느낌이 께름칙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